김규정/한학자

⦁山寺聞琴 산사에서 거문고 소리를 듣고

兩三仙客梵宮中 산사에는 두세 사람 선객
無事彈琴雨滴桐 일 없이 거문고 타자 비는 오동나무 적신다.
舜帝五絃今尙在 순임금 오현금 아직도 남아 있으니
南風何異昔時風 옛적의 풍류 남풍가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注)
舜帝五絃 - 순(舜) 임금이 오현금(五絃琴)을 처음으로 만들어 남풍가(南風歌)를 지어 불렀다.

(二)
山酒盈樽山果多 산술 동이에 가득하고 산과일도 많으니
朱門大爵可爭誇 세도가 고관대작과 다투며 과시할 만하네.
莫言絲竹聲淸耳 관현악소리 귀 맑힌다고 말하지 마라
澗瑟松琴別有歌 솔 거문고에 여울 비파소리 별천지 가락일세.

⦁次吳生韻 오생의 시에 차운하다.

雲衲曾爲物外人 운수납자는 예전에 세상 밖 사람 되어
翻嗟塵世謾逡巡 속세 탄식하며 속이고 말하며 어정거렸노라.
長辭世上名兼利 세상 오래 떠나면 명예와 이끗은 무엇인가
永別人間愛與嗔 영원히 작별하는 인간 사랑하고 성내리오.
蘿月松風常作伴 등덩굴 달 솔바람은 항상 짝이 되고
白雲紅樹好爲隣 흰 구름 단풍 숲을 이웃삼아 좋아했다네.
今將一錫飛天外 오늘 석장 하나로 하늘 밖 날렸더니
燈下論文又幾年 등불 아래서 시문 읊기를 또한 몇 해던가.

次柳生員 유 생원의 시에 차운하다.

仁恕雙行道自通 사랑 관용 함께 행하면 도 절로 통하니
超群淸節是天工 무리에서 뛰어난 맑은 절개는 하늘의 조화라.
功名得失明知夢 공명 득실 꿈같다는 걸 환히 알면
家國興亡暗筭空 국가 흥망도 쓸데없이 속으로 헤아려보리.
春煖江城看海月 봄볕 따스한 강성에서 바다 달구경하고
秋凉山市聽松風 서늘한 가을 산간마을서 솔바람 소리 듣는다.
人生所遇無非命 인생 때 만나는 것은 모두가 운명이라
君子安天有素同 군자가 마음을 편안히 하면 평소와 같다네.

春風遊松廣寺 봄바람 타고 송광사에서 놀다.

生來唯抱物外情 평생 세속 밖의 정취만 안고서
浪吟詩輕萬戶侯 부질없이 읊은 시는 만호후를 가벼이 여겼다.
浮雲世事付他人 뜬 구름 같은 세상사는 타인에게 맡기니
綠水靑山心素留 녹색의 물과 푸른 산은 평소 마음에 머물렀다.
春風不禁逸興飛 흥취 일자 봄바람 주체할 수 없어
笻向曺溪山水幽 지팡이는 으슥한 조계 산수로 향한다.
行尋石逕十里餘 십여 리 돌길을 거닐어
濯足淸溪塵慮收 맑은 시내서 발 씻자 속된 생각은 사라진다.
盤桓殿閣爽胸襟 전각에서 어정거리자 흉금은 상쾌하고
嘯咏樓臺淸眼眸 누대서 한 곡조 뽑자 눈앞이 맑게 트인다.
仙蹤異境翫復翫 별천지 신선 자취 몇 번이고 완미하고
月榻風欞遊更遊 풍월 읊는 평상난간 다시 노닐기를 거듭했다.
玲瓏澗舌慰殘夢 영롱한 산골 물 소리 어설픈 꿈 위로하고
浙瀝松聲消客愁 불어오는 소나무 소리는 객의 시름 풀어준다.
今來烟景問如何 오늘 와서 안개 속 경치 어떠냐고 물으면
花滿溪山風滿樓 꽃 만발한 조계산은 바람만 누각에 가득하다.
蓬萊方丈未專美 봉래 방장만 아름답지 않으니
武陵桃源何更求 무릉도원을 어떻게 다시 찾으랴.
居僧盡是學道者 절간 중 모두가 도를 배우는 자들이라
鶴弟雲兄度春秋 구름 학 형제는 어데서 봄가을 지냈는가.
明朝携友又登山 내일 아침 벗과 함께 또 등산하려니
幾多梵宮羅雲頭 산사 구름 가에 비단은 얼마나 많던가.
南臺遊了復北亭 남대 유람하고 다시 북정으로
叙嘯東臯又西丘 휘파람불며 동쪽언덕에서 또 서산 올랐다.
穿林渡水路已窮 숲길 뚫고 물 건너자 더 갈 길 없어
萬壑千峯探勝周 온갖 골짜기와 봉우리 두루두루 탐승했다.
登臨絶頂恐到天 정상 올라 내려다보자 하늘인가 두렵고
俯仰乾坤豪氣稠 하늘땅 굽어보고 쳐다보자 호기가 충만하다.
山酣水醉愽高閑 산수에서 마시고 취하니 너무 한가해
月伴烟羣賭自由 안개무리 속 달 벗하여 마음대로 놀리라.
山花啼鳥共爭春 야생화 새 울음소리 봄을 다투고
客興詩思俱悠悠 시상 생각하다 나그네 흥취 절로 일구나.
雲林寄跡樂一生 구름 걸친 숲에 의탁하자 일생이 즐거우니
蝸角功名非所謀 달팽이 뿔 위의 공명 다툼은 도모하지 않으리.
從今永作遊山客 이제부터 영원한 유산객이 되어
免得風塵東郭羞 풍진세상 동곽 선생 수모는 당하지 않으련다.

注)
蝸角(와각) - 세상 사람들의 명리(名利) 다툼에 끼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와각의 다툼은 달팽이의 왼쪽 뿔에 있는 촉(觸)나라와 오른쪽 뿔에 있는 만(蠻)이라는 나라가 영토를 다투느라 전쟁을 벌여 죽은 시체가 백만이나 되었다는 우화로 기사는 ⟦장자(莊子)⟧에 있다.
東郭 - 동곽선생(東郭先生). 한 무제(漢武帝) 때 제(齊)나라 사람으로 살림이 빈궁하여 바닥이 없는 신발을 신고 눈 위를 걸어 다니자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吹笛峯上憶崔仙 취적봉 정상에서 신선 고운 최치원 선생이 생각나서

東風初入小窓欞 조그만 창 난간 봄바람 처음 들고
春鳥聲中殘夢醒 봄새들 지저귀자 선잠 꿈을 깨우는구나.
花開日暖山面紅 꽃 피고 햇살 따습자 산 낯은 붉고
雨歇風輕溪口鳴 비 그치고 산들바람 불자 시내 어귀 운다.
無端步及吹笛峰 무단한 발걸음 취적봉에 미치니
想得孤雲多感情 제일 고마운 고운 최치원 신선 생각난다.
千年華表鶴不來 천년 화표 학은 오지도 않고
萬古伽耶山色靑 만고의 가야산 산 빛만 변함없구나.
淸都消息久寂寥 청도소식은 오랫동안 적적 쓸쓸하고
閬苑仙蹤猶晦㝠 낭원 신선의 자취는 아직도 캄캄하다.
風燈今古事杳茫 바람 앞 등불처럼 고금 일 아득하니
虛耶實耶難自明 거짓인가 진실인가 스스로 밝히기가 어렵구나.
千秋一局夢邯鄲 오랜 세월은 한판 바둑 한단 꿈 같으니
赤松王喬徒買名 적송자와 왕자교 무리도 이름 팔지 않았다.
桃源玄圃迹雖灰 무릉도원 현포의 자취 만사 잊었지만
依舊溪山芳草榮 산천 예전과 다름없이 향기로운 풀 만발했다.
莫言神物掃地空 신선 모두 사라졌다고 말하지 마라
紅流洞溪古今聲 홍류동 계곡은 예나 지금이나 명성이 높단다.

▲국보 보림사 철불 ▲국보 보림사 철불

注)
吹笛峰(취적봉) -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에 있다.
千年華表鶴 - 한(漢) 나라 때 요동(遼東)의 정령위(丁令威)란 사람이 영허산(靈虛山)에서 선술(仙術)을 배워 학으로 변하여 자기 고향에 돌아와 화표주(華表柱)에 앉았었다는 이야기.
淸都 - 옥황상제가 산다는 천상(天上)의 궁전이다.
閬苑(낭원) - 곤륜산(崑崙山)의 꼭대기에 있고 신선이 산다는 곳. 선경(仙境). 선향(仙鄕).
夢邯鄲(몽한단) -  인생과 영화(榮華)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노생(盧生)이 한단(邯鄲) 땅에서 여옹(呂翁)의 베개를 빌려서 잠을 자며 80년간의 영화로운 꿈을 꾸었는데 깨고 보니 여옹이 누른 조밥을 짓는 사이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赤松王喬 - 전설 속의 선인인 왕자교(王子喬)와 적송자(赤松子).
玄圃(현포) - 천계(天界)와 통한다고 말하는 곤륜산(崑崙山) 정상에 있다는 신선의 거처를 말한다.
紅流洞(홍류동) - 가야산 천석(泉石) 사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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