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헌정회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23차 정기총회를 통해 김옥두 회원이 신임 부회장에 지명됐다고 밝혔다.

헌정회 회장은 회원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며 부회장은 총회의 위임을 받은 회장이 지명한다.

(사)대한민국헌정회(약칭 헌정회)는 국회의원 출신들의 모임으로 국회에 등록된 법정단체이다. 초대 의원(제헌의원)부터 현역 의원(준회원)에 이르기까지 역대 국회의원 2089명이 회원이다. 작고한 회원을 제외하고 1178명이 정회원이다.

김일윤 전 5선 의원이 지난 3월 23일 실시된 제22대 헌정회장 선거에서 김문기·김동주 전 의원과의 치열한 경선 끝에 신임 헌정회장으로 당선됐다.

김 신임 부회장은 취임 인사말에서 “국가와 정치권 모두 혼란한 시기에 정치 원로들의 모임인 헌정회 부회장을 맡게 돼 책임감이 막중하다”며 “여러 선후배 회원들의 뜻과 힘을 모아 국가 발전에 공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헌정회는 매년 국회로부터 60여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65세 이상의 회원들에게 매달 120만원씩 원로회원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1938년 전라남도 장흥군 대덕읍 연지리에서 태어나, 목포상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전기과를 중퇴했으나 이후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박정희 정권 때 김대중 국회의원의 비서관으로 활동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다. 이후 6 차례의 고문, 투옥을 경험하였다.
중앙정보부 고문당시 ‘김대중은 빨갱이다’라고 인정하면 국회의원과 평생 호화로움을 제공하겠다는 유혹을 견디어 냈다. 

지금도 고문 후유증(특히 발바닥)으로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1980년 신군부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때에도 연루되어 고문당하고 투옥되었다. 그러면서 정치규제를 당하였다가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 이후 민주화추진협의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입후보하려 하였으나 한화갑과 같이 검찰로부터 피선거권이 없다는 통보를 받아 출마가 좌절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93년 김대중의 사조직 민주연합청년동지회(약칭 연청)의 회장에 선임되었다. 1995년 김대중이 정계복귀하여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민주당을 탈당하여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장흥군-영암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9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새천년민주당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천년민주당 내에서 노무현 후보를 따르는 사람들과 사이가 안 좋았다.
그는 권노갑, 한화갑 등과 함께 동교동계 1세대로 꼽힌다.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동교동계 가신인 권노갑 · 한화갑 · 남궁진 · 최재승 · 설훈 · 윤철상과 함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된다면 집권기간 내내 청와대와 행정부 임명직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여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실제 이들 7명은 이 원칙을 지켜서 청와대, 행정부, 산하 공공기관, 공기업 등 대통령 임명직으로는 가지 않았다. 대신 선출직인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는 계속 출마하였다.

김대중이 야당 시절 선거에 출마할 때마다 경호업무를 담당하였다. 오랜 기간 경호 업무를 담당하면서 나름 노하우가 쌓였는지 1997년 대선 때는 경호업무 지원차 나온 일선경찰들에게 경호요령을 전수할 정도였다고. 이때문에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후 한때 대통령 경호실장으로도 거론되기도 했다. 또한 사적으로 김대중의 심부름을 도맡았고 김대중이 영국으로 잠시 떠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중 재밌는 에피소드로 홍어를 좋아하는 김대중을 위해 목포로 직접 내려간 적이 있었다. 큼지막한 홍어를 들고 흡족해 하며 선생님이 참 좋아하시겠네 라고 혼잣말을 했는데 그 얘기를 들은 주인이 화들짝 놀라 김대중 총재를 일컫느냐 물었고 맞다고 하자 사실 칠레산이고 흑산도 홍어는 따로 있다며 돈도 안 받고 바꿔주었다고 한다. 이 얘기는 전 청와대 요리사 안유성도 증언한 바 있다.

2012년에는 오랜 동지였던 한화갑에게 ‘나의 동지이자 친구인 화갑이,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라는 제하에 “한때 ‘리틀 DJ(김대중 전 대통령)’로까지 불린 자네가 이제 와서 이럴 수가 있는가” 라는 단장의 아픔을 편지로 남기며 새누리당 행을 비판하기도 했다.
지금도 매주 화요일 김대중 대통령의 묘소에 참배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참배객은 줄었지만 그는 한주도 빠지지 않고 참배하고 있다고 한다. 의향의 피가 흐르는 자랑스러운 장흥의 정치인이자 인간 보물이다.

부인 윤영자 여사의 헌신적인 내조가 김옥두의원의 정치인생에 밑거름이 되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도 있다. 여사의 사이에 1남 1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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