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땅에 서린 서글픈 혼을 위로하고
미래를 기원하는 126년 만의 진혼제
그 의미와 의의를 되짚어 보다... 

▲바라춤

●●●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바탕이 되는 장흥 석대들 전투
동학의 ‘사람은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적극적으로 또 격렬하게 실천한 ‘동학농민혁명’은 한국 근대사를 이루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 중 하나다. 신분제 폐지와 모든 사람의 평등을 외치며 오래도록 조선의 근간으로 작용해온 유학(儒學)과 양반 중심 사회를 개혁하고자 한 민중의 외침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미 깊은 울림으로 다가 온다.
동학농민군의 행동준칙에서 엿보이는 인명 존중과 자주정신은 이후 항일의식으로 이어지고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와 같은 역할을 했다. 역사학자 이이화는 그의 저서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에서 3·1운동에서 나타나는 동학농민군의 자주정신은 이후 독립선언서는 물론 나아가 4·19혁명, 5·18 민주화운동 등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으로 이어졌다고 서술했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민주주의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동학농민운동의 정확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온 가장 큰 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동학농민혁명’의 무대가 되어온 곳이 우리 장흥군에도 여러 곳 존재하고 있다. 1894년 15일간 치러진 치열한 ‘석대들 전투’를 중심으로 남산 전투지(장흥읍 남동리 남산공원), 농민군들이 자리 잡았던 점령지와 주둔지도 다수 있는 곳이 바로 우리 장흥이다. 장태 장군으로 유명한 이방언 장군 또한 장흥 용산 출신으로, 동학농민혁명의 최대ㆍ최후 전투였던 ‘석대들 전투’를 지휘했다.

1894년 겨울,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며 1만 명, 최대 3만 명으로 추산되는 농민군이 장흥군 석대들에 집결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농민들의 외침과 몸부림은 신식 무기를 앞세운 조일(朝日) 연합군에게 큰 타격을 받았고, 석대들 전투를 마지막으로 동학농민군의 대일(對日)전쟁이 막을 내렸다. 수많은 농민이 석대들에서 목숨을 거둔 것이다. 소중한 이들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아픈 기억이 서려있는 석대들이지만 그 숭고한 정신을 늘 그리고 또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자유와 평등이 존재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석대들 전투 이후 126년만에 처음 치러진 진혼제

▲대금/이승호

지난 5월 28일 오후 4시, 장흥군 장흥읍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는 석대들에서 희생된 3,000여 명의 농민혁명군과 진압에 참여했던 수성군 100여 명의 넋을 달래는 ‘장흥동학농민혁명희생자 진혼제’가 열렸다.
그 옛날, 후손들에게 더 나은 나라를 물려주고자 농기구 대신 무기를 들고 석대들로 향한 농민들의 열망과 한(恨)을 달래는 동시에 그 업적을 기리고 장흥군의 발전을 기원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진혼제는 장흥군의 여러 단체와 기관의 협력 아래 진행되었다. 장흥군을 무대로 하는 동학농민혁명 역사의 중요성을 다양한 기관과 문화단체가 동일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그 의의를 기리기 위한 노력이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행보라 하겠다.

석대들 전투 이후 126년 만에 치러진 ‘진혼제’는 대금의 아름다우면서도 서글픈 선율로 그 막을 열었다. 이승호 대금 연주자는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의 실외입구에서 구슬픈 멜로디로 희생자들의 넋을 초대했다. 대금 연주에 이어 한경자 무용가의 살풀이가 이어졌다. 단아한 손끝을 따라 움직이는 새하얀 살풀이 수건의 우아한 곡선은 대금 소리를 듣고 모인 영혼들을 토닥이고 달래는 듯 보였다. 살풀이가 끝난 후 묵직한 징 소리가 기념관에 울려 퍼졌다. 징 소리를 신호로 시작된 것은 스님들의 염불이었다. 징 소리가 주도하는 대로 염불과 합장이 이어졌고 바라 소리도 추임새처럼 더해졌다.
실외에서 시작된 진혼제는 염불이 끝난 후, 위패와 태평소를 필두로 농악대가 그 뒤를 이어 둥근 형태의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을 따라 돌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모인 영혼들을 다시 한번 안내하기 위한 절차 같았다. 위패와 농악대, 그리고 스님들의 행렬은 진혼제가 거행될 기념관 영상실로 향했다.

진혼제를 위해 발걸음을 옮긴 유족들과 장흥군민들이 기다리고 있는 영상실 정면에는 위패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에 위패를 안치한 후 진혼제를 주관한 (주)장흥신문 백광준 대표의 인사와 동학농민혁명의 정신 계승을 위해 행사에 참석한 국회의원 김승남 의원의 인사가 있었다. 특히 김승남 의원은 “동학농민혁명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라고 표현하며 “이번 진혼제와 같은 행사가 꾸준히 열려 혁명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이어받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한다”면서 진혼제의 의의를 언급했다.

진혼제의 시작에 앞서 다시 한 번 대금 연주와 살풀이 공연이 단상 위를 꾸민 후, 법주 호산스님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진혼제의 본격적인 의식 ‘천도재(薦度齋)’가 시작됐다.
첫 번째 순서는 ‘시련(侍輦)’이었다. ‘시련’은 영혼들을 모시고 또 모인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 여러 성현을 청해 모시는 의식이다. ‘시련’ 다음으로 이어지는 의식은 ‘대령ㆍ관욕(對靈·灌浴)’이었다. ‘대령ㆍ관욕’은 영가(靈駕)님을 위로하고 안심시키는 동시에 영가님의 죄업을 씻어내는 의식이다. ‘대령ㆍ관욕’ 다음 순서는 ‘상단불공(上壇佛供)’이다. ‘상단불공’은 부처님께 축원을 부탁드리는 염불로 진혼제에 모인 영가들의 혼을 부처님께 부탁드리는 의식이다. 다음 순서인 ‘관음시식(觀音施食)’은 제사를 모시는 염불로, 유족 대표와 (주)장흥신문 백광준 대표, 그리고 희망하는 참여자들이 위패 앞으로 나아가 절을 하고 향을 올렸다. 마지막 의식은 ‘회심곡(回心曲)’이었다. 진혼제의 자리에 모인 영가님들의 왕생극락을 위한 의식으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좋은 곳으로 가시라는 염불로 진혼제의 끝을 장식했다.

진혼제 의식에는 법주 호산 스님의 염불과 함께 태징, 북, 목탁의 연주와 태평소의 애절한 선율, 바라춤과 연주의 동작이 진혼제의 엄숙함을 더했다. 또 진혼제를 위해 동학혁명기념관을 찾아준 이들의 정성도 더해져 유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살풀이/한경자
▲살풀이/한경자

●●● 과거를 기억하려는 진혼제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중요한 의식 
 

이번 진혼제는 동학농민혁명 석대들 전투에서 희생된 원혼을 달래기 위해 살풀이, 시킴, 천도제가 한자리에 모인, 126년 만에 처음 치러진 의식이며 또 다시 없을 소중한 순간이었다. 이는 단순히 희생되신 분들을 기리기 위한 기회일 뿐만 아니라, 인간 평등을 외치며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동학의 정신을 그리는 중요한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더불어 장흥의 발전을 기원하는 염원을 담은 의식인 만큼 그 의의 또한 남다른 행사라 하겠다.

 진혼제의 목적과 의의를 생각하는 동시에 깊이 고려하고 또 배려해야 하는 부분은 진혼제에 참석한 유족들의 마음일 것이다. 유족 대표 이정신 유족회장은 이번 장흥동학농민혁명희생자 진혼제에 대해 “너무 뜻깊은 행사로 이렇게까지 준비가 완벽할 수 있었느냐”며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그동안 한맺친 원혼들이 구천에 떠돌아 다녔는데 이제 좋은 곳으로 가실 수 있겠다”라는 감상을 남겼다. 오랜 세월 유족들만이 감당해야 했던 그 슬픔을 진혼제를 통해 많은 사람과 나누고 또 위로받은 기회는 지금까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진한 감동이 유족들의 마음에 만족을 주고 또 위안을 준 것 아닐까.

우리 장흥의 그 넓은 들판에서 있었던 가슴 아프고 슬픈, 하지만 진취적이고 적극적이었던 ‘석대들 전투’는 단순한 과거의 기억이 아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루는 근간이며 우리가 계속 지키고 나가야 할 고귀한 정신이기도 하다. ‘장흥동학농민혁명희생자 진혼제’와 같은 행사는 우리 지역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그 가치를 널리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같은 행사에 주목하고 관심을 두는 것이다. 과거를 제대로 알고 인식해야 비로소 밝고 희망찬 미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진혼제를 통해 우리 장흥은 한 단계 높은 차원의 발전을 이루고 또 거듭할 것이다.   
 

▲용선
 ▼장흥여울타 풍물패 
 ▲위패를 든 이정신 유족회장  ▲염불(시련, 대령ㆍ관욕, 상단불공, 관음시식, 회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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