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훈고문/장흥교도소 교화위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 19의 사태는 오랜 기간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바이러스에 의한 위협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요구했고, 오래도록 절대 기준으로 작용했던 방식과 절차는 갈아엎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급격한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많은 사람은 점차적인 원상 복귀를 갈망하고 있으나 이 또한 쉬워 보이지 않는다. 혹자는 코로나 19 이후 예전의 생활 방식은 의미가 없다며 새로운 사회와 일상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몇몇 전문가의 지적을 떠올리며 「이제는 익숙해져야 한다」는 다짐을 하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 변화는 쉽지 않다. 뼈를 깎는 노력을 동반해야 하고 또 꾸준히 임해야 가능하다. 나쁜 습관을 없애고 좋은 습관을 익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한 사람의 일상에 변화를 가져오는 일도 어려운데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한 활동에는 상상 이상의 노력과 꾸준함이 필요하다.

●●●「꾸준한 실천」이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다.
장흥교도소 교화위원 정종훈 고문은 「꾸준함」의 미학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선뜻 나서기 어려운 교도소 교화위원 활동을 29년간 전개해 왔기 때문이다. 정종훈 고문에게 「지속적인 활동」의 근원이 무엇인지 물었다. 1992년에 교화위원으로 위촉된 후 약 30년 세월 동안 매달 2~3회 교도소를 방문해 온 그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뻔한 질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경 속에서 「꾸준함」이나 「지속」, 「계속」이라는 미덕이 빛을 발하고 세상을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의 씨앗임을 잘 알고 있기에 뻔함에도 지나칠 수 없었다.
“대단한 목표라던가 큰 것을 바라고 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알아가고 또 친해지고 하는 과정이 참 좋고 무엇보다 사소한 관심이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걸 보았을 때 소외된 주변을 살피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형 동생 하면서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때로는 만나기도 하고. 이런 관계가 절 행복하게 해서 교화위원 활동을 계속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교화위원 정종훈 고문이 하는 일은 정기적으로 교도소를 방문해 재소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상담을 통해 재소자 한 명 한 명의 넋두리를 들어주기도 하고 넓은 강의실에서 살아온 이야기나 삶의 역경을 공유하기도 하고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줄 때도 있단다.
소외된 이웃을 돕자며 주위의 권유로 시작한 교화위원 활동 초반에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들려주는 일이 무언가 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의 응원과 무엇보다도 출소 이후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볼 때마다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두려움보다는 “이들을 위해 계속 해보자”라는 마음이 30년의 소리 없는 봉사에 이르렀다고 한다.

 

●●●교도소에 한정되지 않는 교화 활동

정종훈 고문의 교화 활동은 교도소라는 영역에 그치지 않고 있다. 정고문의 근면 성실함과 봉사정신은 주변의 칭송이 잦다. 특히 7남매 장남으로 형제간의 우애는 모두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꽤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정종훈 고문이 보여준 언행은 우리 사회에 큰 경종을 울렸다. 2004년 어느 날, 부모로부터 버려진 뒤 떠돌아다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식당에 들어가 금품을 훔친 혐의로 구속된 L양을 위해 정종훈 고문이 보여준 행보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당시 정종훈 고문은 L양을 돕기 위해 경찰서와 검사를 찾아가 선처를 호소한 것은 물론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 함께 살면서 학교도 보내겠다”고 담당 검사에게 약속했다. 그의 이런 노력이 모두가 꿈꾸는 아름다운 결말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많은 이들이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이 처한 상황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가 L양의 사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렸을 때 겪은 배고픔의 기억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이 겪은 어려움을 떠올리면 타인의 사연이 그저 남의 일 같지 않다고 정종훈 고문은 말했다. 그래서 재소자와의 면담 후 김장김치를 들고 그들 가족이 사는 곳을 방문한 것도 여러 번이란다. 또 자신이 현재 운영하는 목욕탕(원모텔) 이야기를 하며 출소 후 와서 꼭 씻고 가라고 강조한 적도 있다고 하니, 교화위원이라는 단어로는 다 담을 수 없는 폭넓은 활동을 엿볼 수 있었다.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30여 년 가까이 수많은 재소자와 출소자를 만나고 겪은 그가 가장 안타깝게 여기는 부분이 바로 「재범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출소해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해 다시 범죄로 손을 뻗는 이들을 많이 봐 왔어요. 그들을 볼 때마다 참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그들에게 적은 기회라도 준다면 삶을 재건 할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출소자를 바라보는 사회 시선이 아직은 차갑기만 하고. 사회적응을 못하고 다시 나쁜 길로 빠지는 분들이 늘 제 마음을 아프게 해요.”
오랜 기간 교화위원으로서, 또 재소자와 출소자의 벗으로서 그는 이 악순환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한다. 이 슬픈 현실을 바꾸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지 물었다.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나름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교도소 수감 생활 중에 돈을 벌 기회가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다들 돈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잖아요. 수감 중에 가족과 연락이 끊기는 재소자들도 많은데 그들이 매달 적은 돈이라도 벌어 가족들에게 보내 주고 하면 가족과 꾸준히 연락하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고 또 출소 후에 재기할 수 있게 되면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사회는 여전히 그들을 반기지 않는다. 출소 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고 바깥세상에서의 삶을 이어나가는 일은 녹록지 않다. 출소 시 지급되는 수당으로는 제대로 된 방 하나 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시 범죄로 손을 뻗게 되는 이 구조를 개선하려면 교도소 내에 공장과 같은 시설을 설립해 재소자들에게 기술을 배우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취업이 가능한 기술습득과 수입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절실하다고 정종훈 고문은 강조했다.

 ●●●매일 작은 선행을 쌓아가는 삶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우리 사회가 거리를 두는 이들 곁에 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도와주며 또 좋은 친구로 지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 지난한 과정을 담담히 이어온 정종훈 고문과 「선행」에 대한 이야기도 짧게 나누었다.
“대단한 것을 하겠다는 마음보다는 하루에 한 번씩 좋은 일을 하면 되지 않을까요? 더운 날 길가에 계시는 어르신께 어디까지 가시느냐고 물어보고 마을까지 태워 드리는 일 같은 것도 그렇구요. 생각해 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 다리 건너 다 아는 사이이기도 하구요.”
이런 작은 실천 또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좋은 일이라고 그는 말을 보탰다. 이 사회가, 시민 한 명 한 명이 출소자에게 이와 같은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고 또 믿음을 보여 준다면 전국 50여 곳의 교도소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며 미소를 지었다.
현재 정종훈 고문은 여섯 명의 출소자를 관리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관리」라는 단어는 적합하지 않게 느껴진다. 평소 알고 지내는 형, 동생과 있었던 전화 통화나 만남을 이야기하는 듯 들렸기 때문이다. 그만큼 자주 소통하고 허물없이 지낸다는 뜻이다. 이렇듯 친근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와 이해 덕분이라고 그는 말했다. 사실 혼자서 세상을 바꿀 순 없다. 결국 모두가 함께 뜻을 모아야 가능한 일이다. 정종훈 고문의 실천 또한 가족의 동의와 지원이 있어 여기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종훈 고문과 그의 가족이 출소자에게 보여주는 친절과 믿음까지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가 나를 믿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그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주면 어떨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기에 곱씹고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코로나 19 사태 이후 많은 이들이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럴 때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것이 우리 이웃의 아낌없는 나눔과 배품이었다.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고 나 자신을 다독이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들을 대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희망이 넘치는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저작권자 © 장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