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내게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무척이나 당황했던 시절이 있었다.
잘하는 것도 없고 좋아하는 것도 없으니 자신감 있게 뭐라 이야기할 것이 딱히 없어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두려워 무언가를 생각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린 마음에 상처는 그렇게 쉽게 잊을수 없는 아픔으로 남아 있었다.

20대 후반 삶의 중심을 잃고 방황하던 중 우연히 읽은 책이 내삶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되었다.
‘잘 하는 것을 찾으려면 경험해 보라’ 경험해 보지 않으면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니 많이 배워 보라는 그런 내용으로 마지막 문장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경험이 재산이다’.
‘그래 나도 기술을 배워 볼까.’ 이왕이면 직업적인 것까지 염두해서 미용 쪽으로 생각을 해 보았다. 그때 마침 미국에 사는 친구가 초청했기에 나는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내친김에 미용학교를 등록했고, 헤어ㆍ네일ㆍ피부 관리를 배우게 되었다. 전 세계 다민족이 모여 각자 배움의 열정을 꽃 피웠다. 적성에 피부 관리 쪽이 맞아 졸업 후 자격증을 바로 취득했고, 가정도 꾸렸고, 피부 관리실도 차렸다. 주변 사람들이 너무 빨리 가게를 오픈한다고 걱정을 했지만, 나는 2년 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동시에 많은 피부 관리실에 가서 손님이 되어 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도전을 해 보자 생각했다.
그냥 단순하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손님의 입장이 되어 일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설렘 반 두려움 반 그렇게 모험이 시작되었다.

일상에 지쳐 나를 찾아온 고객에게 세상에서 제일 편한 음악과 함께 관리실 방안 가득 아로마 향을 준비했고, 나무 족욕기에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게 했다.
얼굴 피부 관리를 위한 재료는 최상의 천연 재료를 사용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손수 만든 따뜻한 차 한 잔도 대접하였다. 그리고 손수 만든 따뜻한 차를 정성을 다해 내놓았다.
친구 같은 고객들이 한 명 두 명 늘어가면서 처음으로 자신감이 생겼다. 유년시절 아픈 트라우마도 스스로 치유되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경험을 들을 수 있었고, 조금씩 가게도 성장해 나갔다.

다른 가게도 운영하면서 제법 돈도 벌고, 바쁘게 생활했지만, 불행하게도 광우병 파동으로 인해 차린 식당이 문을 닫으면서 어려움을 맞게 되었다. 빨리 정리를 했다.
문득 도시 생활을 떠나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LA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피논 힐스라는 시골로 귀농을 하게 되었고 거기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도시생활에서 정신없이 바쁘고 많은 사람을 만났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시골 생활은 자연과 함께 조용하고 평온하였다. 밤이면 어두운 배경으로 펼쳐지는 별의 찬란함과 낮에는 푸른 기운이 있는 묘한 한가로움이 주는 신비함은 뭐라 말할 수 없는 새로움 가득한 신세계였다.

작은 땅을 얻어먹을 것을 손수 길러 먹는 재미가 시작되면서 농사에 눈을 뜨게 되었다. 낮에는 농사짓고 시간 나는 대로 쥬얼리 수공예 기술을 독학으로 공부했고 어느 정도 실력이 생기면서 수공예 쥬얼리를 만들어 팔게 되었다. 그렇게 5년이란 세월이 지나니 또 다른 변화를 맞게 되었다.

▲유치휴양림

고국이 그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 품이 그리웠던 것 같다. 또다시 우리 가족은 어려운 결정 끝에 결국 귀국을 결정하게 되었고,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귀국해서 도착해 보니 옛날에는 몰랐는데, 한국이 너무 좋았다. 여기저기 걸어 다녀도 안전했고 만나는 사람들 모두 인심도 넉넉해 마음이 따뜻해지고 포근하였다.
귀국 짐을 풀고 바로 우리는 몇 군데 미리 생각해둔 지역을 여행 삼아 다니기 시작했다. 여수ㆍ광양ㆍ고흥ㆍ장흥ㆍ보성 중 바다가 잊고 산이 있는 곳을 생각했고 자연이 보전되어 있고 시골이 살아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몇 군데를 둘러보고 실망을 많이 했다.
시골도 도시도 아닌 풍경, 느낌이 없는 삭막함……. 고흥에서 이틀 예약되었던 숙소 일정을 하루 취소하고 그냥 저녁에 무작정 큰 기대 없이 장흥으로 차를 돌렸다.

늦은 시간 도착해 차를 주차하면서 배가 너무 고파 토요시장 강가 2층 한 고깃집에 들어가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그제야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았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 창밖으로 내다본 강가 모습이 영화 속 한 장면 같았고 정말 아름다웠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듯…. 그때의 황홀했던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소중히 남아 있다.

숙소는 노력항에 있는 작은 민박집이었고, 다음 날 다시 장흥읍 쪽으로 차를 돌렸다. 어제 본 장면이 꿈이 아니길 바라면서……. 햇살 좋은 날 예양교 다리에 서서 원을 그리듯 그 자리에서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동서남북 어느 방향을 둘러보아도 병풍처럼 산이 포근하게 둘러싸여 있어 푸른 생명이 감도는 장흥이 참 포근해 보였다. 마치 어머니 품처럼…….

자연이 살아 있고, 시골이 살아 있고, 인심이 살아 있는 내 사랑 장흥에 반해 귀농 정착지로 결심하고 터를 잡아 이제는 어엿한 장흥 군민이 되었다. 부산에 살고 있는 어머님도 어릴 때 살았던 것처럼 시골이 살아있다면서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시고 장흥읍 작은 시골집으로 귀촌하셨다.

여수 오동도 섬이 고향이었던 어머님은 부산 객지 생활을 접고 시골 인심 가득한 이곳에서 조금씩 적응해 나가셨다.
원래는 아버님과 같이 살기 위해서 집을 구했는데, 이사 오기 며칠 전 아버님은 우리들을 놔두고 새벽에 주무시다 말없이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나셨다.
지금 어머님은 다행히 작은 텃밭을 일구면서 움직이고 좋은 공기와 함께, 같은 나잇대 할머니들과 이웃하시면서 정말 건강해지셨다. 

나 역시 이제 몇 해가 넘어가니 정착을 했고 마음에 맞는 좋은 친구도 생겼다. 그리 넉넉지는 않은 살림이지만 뜻이 맞는 몇 분을 만나 어려운 이웃을 찾아간다. 눈이 보이지 않아 밥을 해 먹기 힘든 분, 곁에 친구라고는 그림자 밖에 없다며 눈시울을 붉히게 하는 외로운 할머님, 부모가 두 분 다 돌아가셔서 어린아이만 사는 집…. 그런 분들과 인연을 맺어 그들의 눈과 손과 발이 되어드리고 있다.

주로 필요하신 것을 물어보면 의외로 생활필수품을 많이 말씀하신다. 비누ㆍ세제ㆍ치약. 나는 10년 이상 피부관리실을 운영하면서 모든 재료를 천연 재료를 사용했기에 아픈분께 좋은 것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달에는 천연 제품 만드는 회사에 연락해서 디자인이 좀 지난 천연 제품이라도 괜찮으니 좋은 가격에 줄 수 있는지 의뢰 했더니 다행히 희망하는 가격에 받아서 너무 기뻤다. 
집 창고에 가득한 천연 제품을 보면 왠지 마음 부자가 된 기분이다.

근래에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하며 배우며 사랑하며”이다.
친환경 생태적 삶을 추구하면서 농사를 짓고 세상살이를 단순하고 소박한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지혜를 주는 책을 놓지 않으려고 했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의 각기 다른 나라에서 귀농을 경험하면서 느낀 점을 예비 귀농인을 위해서 나의 작은 소견을 적어 보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두 번의 귀농에서 귀농이란 살고 있는 집이나 직장의 전환이 아닌 살아가는 방식의 전환이라 생각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 물론 큰 계획도 마케팅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내가 한 일은 식물의 입장이 되어 보는 거였다.
식물이 먼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런 방법으로 실천하고 연구하고 다가 갔더니 어느 날 우리 부부는 식물과 교감하는 아름다운 농사를 짓고 있었다. 땅심이 살아 있고 미생물이 살아 있는 그런 농사를 하고 나서는 자신감을 얻었고, 흙의 향기를 사랑하는 그런 농사를 하고 있었다.

또한,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았다. 사람들은 오염되지 않는 안전한 먹거리를 갈망한다. 세상에서 제일 큰 투자는 주식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식단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조금 덜 벌더라도 자연과 함께하려는 움직임이 입증이라도 하듯이 고학력자, 전문직, 젊은이들이 귀농 귀촌을 생각하며 유입층이 변하고 있다.
막연히 농사나 할까 이런 도피성 귀농이 아닌 농사도 하면서 또 다른 자아를 실현하려는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추세이다.

요즘 시골 구석구석 인터넷이 없는 곳이 없다. 인터넷으로 집안에서 상품은 물론이고 각자 가지고 있는 전문 분야별 지식도 유튜브나 다른 매개체를 통해서 수입 창출이 가능한 세상이다.
도전하자... 우리가 원하는 삶이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자. 끝으로 나는 우리 장흥이 머지않아 이런 모습으로 더 가꾸어지기를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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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나 목포에 있는 도시인들이 자연을 찾아 굳이 강원도나 설악산이 아닌 전남 장흥에 방문해 지친 몸과 마음을 자연에 기대어 힐링하고 충천할 수 있는 어머니 품속 같은 울창한 숲속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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