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자연의 존재양상과 변화체계를 64개의 괘로 구성한 주역(周易)이 사람의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유교의 경전으로 만인에게 읽혀지듯, 24절기 또한 전통 농경사회에서 자연현상에 의한 기후의 변화와 계절의 추이를 안내하는 책력으로 활용 하였다.

그래서 이 날 만큼은 달력에 표시해 놓고 고유한 재례상차림과 전통 풍습을 재연 하며 잡귀를 내쫒고 일상을 쇄신하는 귀한 날로 정성껏 맞이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날에 와서 고도 산업사회의 속도에 숨가쁘게 적응 하느라 사람들의 삶과의 밀접한 관계에서 저만큼 소외되어 겨우 하루 이틀 반짝 머물다 스쳐가는 무슨날 쯤으로 의식하는 경향을 지울수 없다.
그중 스물 한번째 절기인 대설은 하얀눈의 감각이 마치 인간의 혼탁한 정신을 맑게 씻어주는 반가운 스승의 내림과도 같다.

더불어 우릴 명화 “의사지바고” 의 황량한 설경과 슬픈 배경음악을 연상케 하는 클래식한 감성의 세계로 이끈다.
대설에는 말 그대로 눈이 많이 내리고 한층 더 추워진다. 이미 모든 화초는 지심(地心) 속에 따스함을 찾아서 다 잠자리에 들어갔고, 벌레들도, 부지러한 꿀벌과 개미들도 기민하게 제 구멍을 찾아 깊숙이 들어가 자연은 더 없이 고요하고 정 적이다.

이 공간에 대설은 흔히 백조를, 목화솜을, 흰나비를, 대나무 돚자리를 닮았으며 또 갓난아이를 닮았다고도 미화한다. 실제로 인류 정신세계와 물질세계에 풍부한 자원과 양식을 제공하는 자연의 베품이다.
그런 까닭에 눈은 좋은 일이 있을 징조로 여겨왔다. 상서로운 눈은 풍년의 조짐이다. 

하늘 가득 춤추는 거위털 같은 함박눈은 옥처럼 맑고 은처럼 하얗다. 연기처럼 가볍고 버들까지처럼 부드럽다. 먹장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서 어지럽게 휘날리며 아래로 나부낀다.
나무과 담장을 하얗게 단장하고 하얀 눈이 두둑하게 쌓인 땅은 폭신한 새 이불을 덮는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시골마을은 한파의 습격으로 땅의 온도가 낮아지는 것을 막아줌으로써 생물들이 겨울을 온전히 날 수 있도록 보호한다. 말이 눈이 산의 반을 덮으면  보리 수확이 한 섬 더 많아진다. 또한 열흘 안개가 끼고 나흘 맑다는 “복사안개” 기상 때문에 오후 햇볕이 유난히 느껴지는 절기이기도 하다.

또 경험적으로 이때에는 눈이 반쯤 녹아 길이 질퍽거리거나 얼어붙어 사람들은 길을 걷다 빙판에 넘어지기 십상이고, 때로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의지해서 걷거나 넘어졌다가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기도 한다. 남녀가 따로 없다.

그런 중에 소박한 인정의 웃음꽃을 피우면서 감정적으로 더 가까워진다.이 시공은 맞선을 보면서 감정을 교류하는 더 없이 아름다움 모습이기도 하다. 저절로 평등의 의미,협력의 의미, 환희의 의미가 녹아 흐른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실러는 “환희의 송가”에서 평등과 환희의 의미를 칭송한다. 환희의 여신이여 신들의 아름다움이여! 찬란한 빛으로 대지를 비추도다.
심중에 충만한 열정으로 당신의 성전에 발을 디디노라. 당신의 신비로운 힘은 사람을 갈라놓았다 그 모든 것을 다시 묶도다. 당신의 날개가 깃들이는 그 곳에서 사람들은 형제가 되노라.
인간은 대설 앞에서 풍아한 선비가 되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손과 심령으로 대설을 느겼다. 
아득히 펼쳐지는 새하얀 천지에 어지럽게 흩날리는 눈송이에 사방이 새하얗게 옷을 갈아입는다. 날 저물어 푸른 산은 먼데, 날은 차고 오막살이 집 가난하다.
사립문 밖 개 짖는 소리 눈보라치는 이 밤 누가 돌아오나 보다 골방 할아버지 기침 소리도 칵 칵 메마르다.

대설에 대한 감상에는 빼어난 표현이 많다. 당 송 8대 문장가인 시인 유종원은 이렇게 읊었다.
산이란 산에는 새 날지 않고/ 길이란 길엔 사람 자취 끊겼네/ 외로이 뜬 배 도룡이여 삿 갓 쓴 늙은이 / 추운 강에서 눈을 낚네. 

시인의 붓 끝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하 나 없다. 텅 비어 있는 것이야 말로 인생의 본연이라는 것이다.
올해 대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평년보다 의미가  더욱 깊다. 온 지구촌이 코로나 확산으로 생명을 위협받고 생활이 고통받고 사회기능마저 위축된 상황속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새삼 깨닫게 한다.

위기일수록 공동체의 지혜는 인내와 무심 무욕의 소통이 절박하다.
어쩌면 지금 우리 앞에 한창 무르익은 대선 열기의 정국에도 자고나면 울통불통 삐꺽거리며 굴러가는 저 야망의 마차를 잠시 세워놓고 국민앞에서 겸허한 자세로 나는 진정 정직한가, 깨끗한가, 깨우침의 시간을 가져 보라는 백의의 천사 하늘의 전령 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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