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결혼 안 하고 세계를 여행하며 혼자 살 거야.” 라고 외치던 내가 대한민국 남쪽의 끝(정남진)으로 시집을 오게 될 줄이야!

장흥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끝까지 달리면 친정집이 나온다. 처음 장흥 시댁에 인사를 드리러 오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명절이라 차가 막힐 것을 예상해 친정에서 새벽 4시에 출발했지만 거의 10시간이 걸려 도착한 장흥에서 처음 나를 맞이한 건 오후 햇살을 머금고 반짝이는 아름다운 탐진강이었다. 그 순간 10시간 동안의 피로는 순식간에 씻겨 나가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만나게 된 시외할머니, 처음 나를 보시자마자 “오메 내 강아지 왔냐?” 하시며 손을 덥석 잡아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떠오른다. 친정에는 조부모님들이 전부 돌아가셔서 “할머니”란 호칭을 불러 본 게 거의 십수 년 만이었다. 그리고 “강아지”소리를 들은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도시에서의 나는 차갑고 도도한, 차도녀 영어강사였다. 특히 전 세계를 여행하며 자유롭게 살던 내가 갑자기 결혼을 한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집에서 멀리 떨어진 장흥이란 곳으로 시집을 간다는 게 주변 사람들에겐 정말 큰 충격이었다. 다들 처음엔 믿지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진짜 결혼하는 거야?” “진짜 그 먼 곳에서 네가 살 수 있을까?”
“도시에 나오고 싶으면 어떻게 하려고?”
처음 결혼 소식을 전했을 때 주변인들은 축하에 앞서 걱정 섞인 질문들을 쏟아냈다. 도시에서의 삶이 익숙한 나에게 장흥에서의 삶이 과연 어울릴까. 라는 생각을 하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나의 결심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모두의 축복 속에 결혼을 하게 됐다.
그렇게 4대가 함께 하는 시댁, 장흥에서의 삶이 시작됐다.

장흥에서 맞이한 첫 계절은 겨울이었다. 확실히 친정보다는 따뜻한 날씨에 놀라며 시작된 신혼생활. 도시의 핵가족 문화에 익숙한 나는 결혼과 동시에 적응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우선 혼자 자유롭게 여행을 하며 살던 내가 “아내”, “며느리”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됐고 그에 걸맞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처음 장흥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듯 어쩌다가 이 먼 곳으로 시집을 왔냐고 물었다. 사실 내 인생 계획에도 결혼은 없었고, 더군다나 이토록 먼 곳으로 시집을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처음 장흥에 도착했을 때 따뜻하게 내 손을 잡아주신 시외할머니의 손길과 시댁 부모님을 비롯한 모든 형제분들의 진심이 담긴 따뜻한 환대에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결혼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지금, 내 옆에서 곤히잠을 자는 딸을 보고 있으면 어쩌면 이 아이가 태어나기 위해 그토록 먼 길을 돌아 내가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장흥 생활의 시작은 주변 분들의 친절함과 정을 느끼며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봄이 되면서 나는 장흥의 아름다운 자연에 흠뻑 빠지게 됐다. 
작년은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힘든 시기였다. 이곳도 물론 코로나로 인해 외출이나 여행이 자유롭지는 못했으나 이미 집 주변, 장흥 곳곳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딱히 유명한 관광지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내가 사는 이곳이 바로 명소였기 때문이었다. 장날이면 토요시장에서 장을 보고 탐진강 주변을 운동 삼아 걸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장흥에 처음 도착했던 그날처럼 탐진강은 햇살을 머금고 눈부시게 반짝였고 강 주변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가끔은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눈을 감고 그 풍경을 음미하기도 했다.

결혼 전에 나는 전 세계 여행을 목표로 하는 배낭여행자였다. 따라서 정말 많은 곳들을 여행했고 이 세상의 많은 절경들을 가슴에 담았다. 영어 표현 중 'Been there, done that' 이라는 말이 있다. 결혼 전에는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새로운 곳이 없다며 앞서 언급한 영어 표현을 농담처럼 말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일상 중에 이토록 자연의 아름다움을 크게 느낄 줄은 몰랐다. 장흥 토박이인 남편은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 남편에게 나는 “정말 소중한 것들이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당신은 볼 수 없는 거예요.”라고 말하고 싶다.

아름다운 꽃들은 시댁 앞마당에서 잔뜩 피어났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꽃들이 지고 여름이 오면 나무에는 열매가 하나둘씩 열리기 시작한다는 것을 배웠다. 특히 무화과라는 과일이 매우 특이했는데 결혼하기 전에는 무화과나무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시댁에서 처음 무화과나무를 봤는데 이 과일은 특이하게 꽃을 피우지 않고 과일이 바로 열린다고 했다. 시어머니의 정성으로 시댁의 과일 나무들은 무럭무럭 커 나갔고 장흥으로 시집 온 첫 해 여름 정말 과일은 실컷 잘 먹으며 태교를 할 수 있었다. 예쁜 복숭아처럼 예쁜 딸이 태어나기를 기도하며 여름을 보냈다.

이상하리만큼 비가 많이 내렸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자 나무는 오색찬란한 변신을 하게 됐다. 집주변의 나무들이 옷을 바꿔 입는 것을 보자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런 마음을 달래주듯 집 근처의 휴양림에서 휴식을 취할 때면 온 세상이 다 아름답게 보였다. 우리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시간은 흐르고 계절이 변한다는 사실은 늘 놀랍다. 특히 임신 중에는 시간의 변화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아가의 존재는 우리 부부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희망이자 기쁨이었다.

뱃속의 아기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은 날이 갈수록 커지는 만큼 아가도 빠르게 성장했다. 그리고 장흥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겨울,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뱃속에 있을 때 입체 초음파를 찍으려고 시도할 때마나 팔로 얼굴을 가리고 있거나 너무 깊게 잠이 들어서 몸을 움직이지 않아 아이의 제대로 된 얼굴을 볼 수 없었기에 아이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컸던 상황이라 아이의 탄생이 보다 반가웠던 건 아닐까 유치한 생각도 해 보았다. 폭설이 내린 다음 날 태어난 아가는 너무도 건강하고 예쁜 모습으로 우리 부부에게 왔다.

아이가 태어나고 정작 아이의 부모인 우리 부부보다 집안의 어르신들께서 더욱 기뻐해주시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특히 올해 아흔세 살이신 시외할머니께서 남편이 결혼하기 전에는 남편의 결혼이 소원이셨고, 그가 결혼을 하자 남편의 자식을 한 번 보시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다는데 진짜 소원 이루신 것처럼 기뻐해 주셨다.

그리고 도시에서는 이웃이라는 개념이 많이 사라져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장흥에서는 처음 결혼을 하고 이곳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던 때부터 주변 분들께서 진짜 가족처럼 결혼과 임신 그리고 출산을 축하해 주시는 게 너무 신기하면서 감사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온 세상의 축하를 다 받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소중한 아이와 함께 시작된 장흥에서의 삶이 매우 기대된다. 마치 인생을 새롭게 다시 사는 마음으로 장흥으로 시집을 왔고 결혼과 동시에 시작된 내 인생 2막은 성공적으로 시작됐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결혼하기 전에는 내가 4대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집으로 시집을 오게 될 줄 몰랐고 이토록 많은 분들의 사랑과 관심속에서 가정을 가꿔나갈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하지만 이곳 장흥에서 새롭게 시작된 인생이 매우 기대된다. 앞으로 더욱 행복한 일들만 가득할 거란 희망찬 기대를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백 년 가까운 세월을 살고 계신 시외할머니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사람이 태어나서 새끼가 발롱발롱 크는 게 젤로 재미져.”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이 이 짧은 글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많다. 백 년 가까이 이 세상을 사신 분께서 말씀하신 뜻을 완전히 다 이해하기엔 아직 나는 많이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지금도 내 무릎에 앉아 글쓰기를 방해하는 내 귀여운 아이를 보면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말씀의 뜻을. 적어도 ‘발롱발롱 크는 내 새끼’가 주는 행복한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것쯤은 아주 어렴풋이 알겠다.

▲정남진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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