寄良人在謫(기양인재적)/정씨
마른 잎이 바람 앞에 부스럭 거리고
지다 남은 꽃송이 비에 젖어 우는데
꿈결에 임의 생각에 달빛만이 걸려있네.
病葉風中語    殘花雨後啼
병엽풍중어    잔화우후제
相思千里夢    月在小樓西
상사천리몽    월재소루서

정치적인 상황이 변하거나 임금이 바뀌는 틈바구니 속에서 자칫 정적에 몰려 사약을 받거나 적소謫所로 귀양을 가는 경우는 허다했다. 흔히 있었던 일이지만 이를 당하는 당자사들에게는 크나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부모형제간을 말할 것도 없고, 가장 걱정했던 건 내조했던 부인이다. 먹을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입을 것을 먼저 걱정한다. 
꿈결 속에는 천리 밖에 계신 님 생각뿐이거늘, 달빛만이 다락머리 서쪽에 걸려 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꿈결 속에는 천리 밖에 계신 님 생각뿐이거늘(寄良人在謫)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정씨(鄭氏:?∼?)라는 여류시인이다. 감사 도성의 딸이며, 황쇠라는 사람의 소실로만 알려지고 있을 뿐 생몰연대를 비롯해서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바람 앞에 마른 잎이 부스럭대고만 있어도 / 지다가 남은 꽃송이 그만 비에 젖어 우네 // 꿈결 속에는 천리 밖에 계신 님 생각뿐이거늘 / 달빛만이 다락머리 서쪽에 걸려 있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남편 적소에 부치다]로 번역된다. 그리운 임을 기다리는 여인의 애달픈 마음을 읊고 있다. 그 시상은 첩이 되어 밤마다 꿈마다 천리밖에 그리워했음이 보인 시심들이 많았다. 남편이 귀양가서 적소에 있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었을 것이다. 조선 여심은 그렇게 남정네들을 기다리면서 쌓인 한과 시문으로 시름을 달랬음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작품이 대종을 이룬다.
시인은 소소하게 바람 부는 어느 가을날 백짓장 같이 마음을 다스리면서 시상의 밑그림을 그려내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바람 앞에 마른 잎이 부스럭대고 있는데 지다가 남은 꽃송이가 그만 비에 젖어 울고 있다고 했다. 울부짖고 있는 꽃송이는 아무렴 해도 시인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치환置換시킨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화자는 선경의 시상에 의해 후정을 시주머니 속에 빼곡하게 담아내는데 급급했음을 비유법도 없이 덧칠해 보인다. 꿈결 속에는 천리 밖에 계신 임 생각뿐인데, 임은 오시지 않고 외로운 달빛만이 다락머리 서쪽에 걸려 있다고 했다. 행여 오늘밤 내가 임을 생각한 만큼이나마 그도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를 염려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마른 잎이 부스럭대고 꽃송이는 비에 젖고, 꿈결천리 임 생각만 달빛 서쪽 걸려있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病葉: 병든 잎. 마른 잎. 風中: 바람이 부는 가운데. 語: 말하다. 부스럭 대다. 殘花: 지다 남은 꽃. 雨後: 비가 오다. 啼: 울다. // 相思: 서로 생각하다. 千里夢: 천리의 꿈. 멀리 있는 낭군의 생각. 月在: 달이 ~에 있다. ~에 걸려 있다. 小樓: 서쪽 누각. 西: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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