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11월 2일자)에 청태전에 대한 기사가 보도된 이후, 청태전에 대한 군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장흥초등학교 61회 졸업생 카페(cafe.naver.com/jh61.cafe)에선 한때 청태전에 대해 논의가 활발했다.

그 단초는 김재완 유치파출소 담당관이 지난 11월 10일 카페에 '청태전'에 대해 글과 사진을 올리면서부터였다. 당시 김씨는 장흥신문에 게재된 1면 톱기사 ‘청태전 프로젝트 추진하라'는 기사와 함께 관련 사설이 게재된 면의 사진 그리고 자신의 얼굴사진과 농업기술센터 유치출장소 이모씨가 소장하고 있는 청태전 사진을 올렸다. 이에 대한 반응이 대단했는데, 그 요지는 한결같이 하루빨리 청태전 재현과 상품화를 서둘러야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장흥초등 61회 졸업생으로 화순에서 교감으로 재직하고 있는 송용석씨가 이미 지난 1989년 전남대학교 교육대학원 학위논문인 <보림사지역의 토산다전과 전통다업에 관한 연구>에서 장흥의 청태전에 관련, 유치 청태전 현지 답사기록을 남겨두었다는 사실이 박형상 변호사에 의해서 밝혀진 것이다.


이로써 청태전 내용과 관련된 학위논문은, 2006년 6월 이순옥씨가 목포대학교 국제차문화학 협동화정의 논문으로 발표한 '청태전 연구' 외에 송용석씨의 학위 논문이 추가된 것이다.(송영씨는 1988년 <장흥문화>에 '보림사 지역 토산다의 입지와 분포특징'이라는 글에서 청태전에 기술했음도 밝혀졌다).


그러므로 현재까지 밝혀진 청태전에 대한 기본 자료는 ▲일본인 나까오 만조우(中尾萬三),<닌나사 어실어물목록(仁和寺 御實御物目錄)>,1933년 ▲일본인 모로오까(諸岡 存), 이에이리가즈오(家入一雄), <조선의 茶와 禪>,1940,영인본 1992 ▲송용석,‘보림사지역 토산다의 입지와 분포특징’, 장흥문화 제11호,1988 ▲송용석,‘보림사지역의 토산다전과 전통다업에 관한 연구’,1989, 전남대교육대학원 ▲김창윤, ‘잃어버린 돈차, 청태전’, 장흥문화 제22호, 2000 ▲이순옥, ‘장흥지방 청태전 연구’,목포대학교 대학원,국제차문화학 협동과정논문, 2006 등인 셈이다.


알려진 사실에 의하면, 지난 3월에 군청 마케팅과 문모씨가, 당시 강진 무이사에서 청태전에 대한 상표권을 출원한다는 소식을 듣고, 청태전이 장흥 것인데, 어찌 강진에서 상표권을 출원하려느냐, 고 단단이 따지고 부랴부랴 자비로 서울에 올라가 상표권을 출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뒤늦게나마, 군 친환경농산과 생약초 담당부서에서 청태전 상업화에 대한 연구용역을 곧 공시, 용역 계약을 체결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여기서 청태전 재현, 곧 청태전의 부활과 관련,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청태전을 웰빙식품 형식으로 재현하느냐, 아니면 구중구포의 전통방식을 따라야 하느냐의 문제이다.

청태전의 근원지라 할 수 있는 보림사에서의 청태전은 옛날에는 아홉 번 덖고 아홉 번 말린다는 이른바 ‘구증구포(九蒸九曝)’의 제다법으로 청태전을 제다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선말기 문신인 이유원(李裕元?1814~1888)의 <임하필기>에는, 차를 즐겼던 이유원이 임신년(1872) 상원(上元)에 사시향관(四時香館)으로 있으면서 고경선사(古鏡禪師)와 보림차를 마시면서 우리나라 최고 품질의 명차라고 평하고, 보림차의 법제와 품질에 대해 말한 대목이 나온다.


즉, “강진 보림사 대밭의 차는 열수 정약용이 체득하여 절의 승려에게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품질은 보이차 못지않으며 곡우 전에 채취한 것을 더욱 귀하게 여긴다. 이는 우전차(雨前茶)라고 해도 될 것이다”라고 한 대목이 그것이다.

(康津 寶林寺 竹田茶 丁洌水若鏞得之 敎寺僧以九烝九曝之法 其品不下普휴茶 雨穀雨前 所採尤貴 謂文以雨前茶可也-<林下筆記> 券 32)


구증구포 제다방법이 19세기 경에 조선 땅에 성행했다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 기록이라 할 있으며, 범해의 다가(茶歌)에서도 “보림사 작설은 감영에 실어간다”고 했고, 또 초의는 그의 스승인 완호대사를 위해 삼여탑(三如塔)을 건립한 다음 해거(海居) 홍현주에게 명(銘)과 시를 부탁하고 자하신위에게 서문을 부탁하면서 보림차를 선물한 바 있다는 사실에서 당시 보림사의 차가 호남 최고의 차로 유명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구중구포는 한방에서 약재를 만들 때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리는 일을 말하는데, 이 내용이 <본초경>에 처음 등장한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약재를 조제할 때 쓰여져 왔던 말이었다.


그리고 해방 전후로 우리나라에서도 전통적인 제다방식은 구중구포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최근 들어 차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구중구포에 대한 관심도 깊어지고 있으며, ‘구중구포로 제다한 차라야 명차’라는 인식이 절리 인식되고 있을 정도다.

제주다원의 녹차도 구중구포 제다방식으로 만들고 있다고 홍보되고 있으며, 일본등지로 수출하는 고급 명차로 유명한 선암사나 화개사의 차도 구중구포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제 다시 전통의 국내 유일의 명차로서 부활되려는 청태전도 고급 명차로서 반열에 오르려면 한번쯤 구중구포의 전통을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제393호 2006년 11월 23일

저작권자 © 장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