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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꽃 피는 바다 - 소설가 한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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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3.13  23: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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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고선영 writer 이정우 photographer 고영욱

출처 - http://myfriday.joins.com/myfriday/article/m_article_view.asp?aid=258338



‘만져보면 안다’. 바다를 모르는 보통사람들에게는 선문답이다. 그러나 바다가 업인 이들에게는 실재다. 봄이 오는 느낌? 짜디 짠 갯물에 손을 넣어 그 속살을 쓸어보면 겨울바다와 봄바다는 확실히 다르게 반응한다. 봄바다의 촉감이 더 관능적이고 뜨끈 거린단다. 소설가 한승원의 바다가 그렇다.


한승원 선생의 바다는 전남 장흥의 해안선이다. 그 안에서도 가장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여다지(정확히 표기하면 ‘여닫이’이나 현지인들의 어법인 ‘여다지’를 따르고자 한다.) 갯벌이 작가가 보듬고 뒹구는 구체적인 ‘장흥바다’이다. 작가의 업은 글쓰기인데 그 글의 질료들 대부분이 바다다. 그는 바다에서 이야기들을 건져 올리는 글의 어부에 다름 아니다.

“냄새를 맡아도 알 수 있어.”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이번에는 후각이다. 대기 중에 봄기운이 스멀거리면 덩달아 바다가 다른 냄새를 풍긴다는 뜻. 대관절 어떤….

“뻘 특유의 골쾌한 갯비린내가 봄이 되면 더 진동을 하지. 생명이 꿈틀거린다는 징표야. 바다는 우주의 자궁과 같아. 바다의 달거리가 봄의 갯비린내를 뿜어내는 것이지.”

그의 글이 잉태되고 마침내 세상으로 나아가는 작업실 ‘해산토굴’ 은 여다지 갯벌이 한 눈에 조망되는 안양면 율산마을에 터를 잡고 있다. 본래 해산(海山)인데, 더불어 작가가 글을 낳는 해산(解産)의 의미까지로 확장됐다. 해산토굴은 소설의 자궁인 셈이다. 작가는 소설의 자궁에 들어 앉아 우주의 자궁을 만지거나 엿보면서 이야기들을 잉태하고 기르고 낳아 세상 속으로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가장 최근에 낳은 이야기 자식은 장편 《키조개》이다. 《키조개》는 여다지 갯벌의 특산물인 키조개를 종자 삼아 소설, 운명, 죽음, 사랑 등의 화두들을 가로세로로 엮고 있다. 지극히 관념적인 이 화두들에 살을 붙여 현실의 공간에서 뛰어 놀게끔 생명을 부여해주는 하부구조가 다름 아닌 여다지 갯벌. 해산토굴과 바다가 한승원 소설을 공모(共謀)하고 있는 모습이다.

소설은 “키조개 피조개 바지락이 한창 맛깔스러운 봄철의 어느 해 저물녘에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 입은 체구 작달막한, 청죽같이 젊은 여인이 백합골짜기 연안으로 갯것을 하러 나왔다.”는 묘사에서 출발한다.

바다가 있고 패류가 있고 봄이 있고 여인이 있다. 언 땅이 녹으면서 꽃대를 밀어 올리는 새봄이 그러한 것처럼, 막 직조를 시작한 소설의 언어들은 질펀하고 화사하다.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는 데서 이 언어들은 힘이 있다. 실제로 패류들은 봄이 기지개를 펴는 때부터 살집이 최대한 부풀고 맛 또한 최고조에 달한다.


“키조개 새조개 피조개 바지락 같은 패류들은 가장 깊은 겨울에, 그러니까 봄이 막 기지개를 펼 때 최고로 살이 오르고 맛 또한 좋아져. 녀석들을 키워 내느라 갯비린내가 진동하는 모양이야.”

촉각, 후각에 미각까지 들쑤시는 말들의 향연이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이야기가 이즈음 되고 보니 토굴 속이 갑갑해졌다. 작업실 통유리 너머에서 출렁거리고 있는 여다지 갯벌로 자꾸만 눈길이 갔다. 작가가 ‘연꽃바다’라 호명한 그곳 모래톱에 갯비린내를 꿇어 앉혀 놓고 키조개 새조개 피조개 바지락을 안주 삼아 칼칼한 소주를 대작하고 싶어졌다. 소설 《키조개》의 마지막 페이지 두 문장을 인용해 작가를 꼬드겼다.

“우리 갑시다. 여다지 횟집으로.”

갯벌을 코앞에 둔 어느 횟집 원탁. 자글거리는 숯불에 패류들이 얹혀졌다. 우윳빛 육수가 팽이버섯을 품은 채 뽀글거렸다. 알맞게 익은 패류 알맹이들을 육수에 촉촉이 적신 다음 취향 따라 초장 간장 찍어 입속으로 가져갔다. 입 안이 뜨겁고 환해졌다.

맛이라는 게 지극히 주관적인 체험이라서 ‘더 맛있다’는 말은 삼가련다. 그렇더라도 키조개 패주의 육질이 나머지 패류들의 맛을 압도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현지인들이 ‘게두’라고 부르는, 굵은 떡국 편처럼 썰어진 패주는 부드럽고 달콤했다. 갯내음을 닮은 것도 같은 독특한 향이 일품이다.

소설 《키조개》는 이 향기를 “사향노루 암수가 사랑을 할 때 뿜는 향기”라고 묘사하고 있다. 사향노루가 제 뱃속에서 새끼를 길러 세상에 내 놓는 시기는 12월~5월. 겨울~봄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흐름이 키조개의 그것과 일치한다.

“이곳 바닷물은 유속이 느려서 갯벌이 아주 무르고 깊어. 바다를 크게 감싸고 있는 삼비산 계곡은 사시사철 유기물이 풍부한 담수를 제공하지. 당연히 플랑크톤이 풍부해질 수밖에.”

작가가 ‘직관’으로 파악한 키조개 향의 비밀이다. 이 비밀은 사실이기도 하다. 다른 바다 밑 갯벌에서는 키조개가 새끼를 칠 뿐 잘 자라지 않는 반면에 그것을 이곳 바다 밑 갯벌에 옮겨 심으면 신통하게도 잘 자란다는 것. 여다지 갯벌을 품고 있는 득량만 내해는 전국 해안선에서 가장 많은 키조개 산지이기도 하다.

“봄이 되면 바지락 알이 껍질 크기하고 똑같이 굵어집니다. 해마다 벚꽃이 필 때면 일본 친구들이 새조개 피조개를 젤로 많이 수입하죠.”

기별을 받고 뒤늦게 합석한 홍일수산 장영복 사장이 말을 거들었다. 장사장은 이곳 바다 패류들을 현장감각으로 연구해 어민소득으로 연결시킨 선구자이다.

“다른 데 뻘은 모래가 섞여 있고 그란디 여기 뻘은 아조 반질반질 하죠. 논으로 치면 상답중에 상답이지라… 오뉴월에 바지락 풍년났네, 그런 말이 있는디, 쓰잘데기 없이 푸지기만 하다고, 벨라 존말이 아니요. 바지락은 여기 갯뻘에서 나온 봄바지락이 제맛이지라…” 그의 여다지 자랑은 끝이 없다.

장사장이 손을 들어 주방에 수신호를 보냈다. 키가 낮고 넓은 냄비에 담긴 바지락국이 탁자에 배달됐다. 뒤따라 접시에 담긴 한 무더기의 푸성귀가 냄비 옆에 놓였다. 시원 칼칼한 국물이 속을 말끔하게 정화시켜주었다. 푸성귀를 바지락 국물에 얹어 숟가락 뒤로 살짝 눌러주면서 뜨거운 국물을 위에 뿌려주기를 반복했다. 봄 냄새가 순식간에 좌중을 휘감았다. 푸성귀는 봄의 전령사, 냉이였다.

“바다 속에도 등성이와 언덕, 골짜기와 분지 같은 벌판이 있어. 벌판에는 갯벌 밭이 형성되어 있을 테고 그곳에 키조개 새조개 피조개 바지락 따위들이 눌눌한 꽃 같은 입을 벌린 채 먹이사냥을 하고 있을거야, 아마, 지금…”

독백처럼, 한숨을 뱉듯, 썰물이 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작가는 낮게 웅얼거렸다. 대기의 봄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반응하는 녀석들이 바다 밭의 꽃, 패류들이라는 말로 들렸다. 선문답일까, 실재일까. 답을 찾고 싶거든 한번 덤벼보라는 듯이 여다지 갯벌이 슬금슬금 제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고 있었다. 거무잡잡한 갯벌의 속살이 깊고 아득해 보였다.


봄 spot 1. 여다지갯벌
내륙의 시선으로는 산에 들에 새싹이 돋고 꽃이 피어야 봄이겠다. 늘 짠물로 덮여 있어 어제와 오늘이 다를 것 같지 않는 바다에도 계절이 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봄이 오면, 갯벌 냄새가 더 진하게 요동치고 물의 질감이 부드러워진다. 바다 속에서는 꽃이 핀다. 키조개 새조개 피조개 바지락 등 온갖 패류들이 바다의 밭 ‘뻘’에서 가장 왕성한 생명활동을 한다. 득량만의 한 지선인 여다지갯벌은 인근 어느 뻘보다 찰진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바닷물의 유속이 느려 갯벌이 무르고 깊은데다 인근 삼비산 계곡이 유기물이 풍부한 담수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논으로 치면 상답 중의 상답인 셈이다.


봄 spot 2. 삭금 해안도로

장흥 땅이 움푹 들어온 곳에 형성된 바다가 여다지라면, 삭금 해안도로는 남쪽으로 가장 먼 땅을 둥글게 감고 돈다. 회진면에서 삭금초등학교로, 동에서 서로 넘어가는 외길이다. 아득하게 노력, 약산, 금당 등 완도의 섬들이 조망된다. 섬과 해안도로 사이의 바다는 만(灣)의 그것과 달리 깊고 푸르다. 김, 미역을 기르는 지주와 부표들이 바다를 캔버스 삼은 추상화처럼 점과 선으로 인상적인 느낌을 준다. 이 해안도로의 백미는 바다와 길 사이에 형성된 비탈밭들이다. 이청준의 <해변아리랑>, 한승원의 <앞산도 첩첩하고> 등 이 지역 출신 소설가들이 창작의 원형공간으로 삼은 곳이기도 하다.

봄 spot3 회진면 한재공원 할미꽃 자연군락

산수유 매화 철쭉 벚꽃 진달래…. 봄소식을 만방에 뿌리는 화려한 꽃의 목록은 셀 수가 없다. 그럼에도 장흥의 ‘자랑’은 할미꽃이다. 회진면 동쪽 한재공원은 3만여 평에 이르는 산자락 전역이 할미꽃 군락지이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군락이 아니라 자연의 상태로 있다가 이 지역 야생화 모임에 의해 발견됐다. 언뜻 보면 여느 꽃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찬찬히 들여다 보면 흰색솜털과 검붉은 꽃잎의 어우러짐이 깊은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할머니의 주름살, 까칠한 손마디마디가 아름다움 그 이상의 어떤 것으로 느껴지듯이. 공원에서 내다뵈는 회진포구도 일품이다. 둘러보면 바다와 논, 저수지와 강, 산자락과 섬이 절묘하게 얽혀 있다. 꽃구경을 제대로 하려면 3월 중순이후가 좋다.

봄 음식>> 바지락

봄에 최고의 맛을 내는 여다지갯벌 패류 맛을 보려면 안양면 수문리로 가야 한다. 포구에 인접한 바다하우스(061-862-1021)에서는 남도별미로 소문난 바지락 회를 먹을 수 있다. 2~3인 분 (中) 2만5000원, 4~5인분 (大) 3만원. 포구 서쪽 여다지갯벌 해안선 중간쯤에 자리한 율산조개구이횟집(061-862-6588)에서는 싼 값에 각종 조개들을 모듬으로 맛볼 수 있다. 4인 정도가 먹을 수 있는 모듬구이 1접시 2만원.

interviewee 한승원
소설가. 1939년 전남 장흥 출생. 소설, 동화, 시 등 수백 편에 이르는 작품을 발표했고 지금도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장편소설 <아제아제바라아제>가 임권택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 “내 소설의 9할은 고향 바닷가 마을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2007.03.04 18:18 입력 / 2007.03.09 09: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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