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성의 위대함 -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


광장 지하도를 건너 자금성의 정문인 우문에 내걸린 모택동 주석의 사진을 바라보며 건물 안쪽으로 들어서자 자금성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우문 입구부터 관광객들로 북새통이다. 하나투어 등 깃대를 든 가이들만도 얼추 10여명이 돼 보인다. 죄다 한국 사람들이다.

남쪽 끝인 우문에서 시작, 북쪽의 끝인 신무문까지 일직선으로 늘어선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 황제가 정무를 보거나 황후나 궁녀들과 일상을 보낸 건청궁, 교태전, 곤녕궁 등으로 이어지는 자금성. 명청시대 24명의 황제가 살았던 6백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이 고궁은 세계계적인 문화유산이며 거대한 중국대륙의 심장부 같은 곳으로 화려한 중국 과거사를 단적으로 웅변해주는 건축물이다.







전체면적은 72만㎡의 장방형의 이 고궁은 방 수만도 9,999칸(실제 8,886칸)이라고 한다. 자금성(紫禁城)이란 이름도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지역’이라 는 뜻. 자금성의 자(紫)는 우주의 중심인 북극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하늘의 아들이자 중국의 지존인 황제를 의미한다.




1407년, 명나라 영락제가 황궁 건축에 착수, 13년 동안 10만여 명의 장인들과 100만 명의 인력을 동원해 축조했다는데, 기록에 의하면 건축될 당시 자금성의 전각들은 지금보다 훨씬 장엄 화려했으며 그 중에는 9층 높이의 아름다운 전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명나라 말 이자성의 난 등 수많은 전란으로 모두 불타버렸고, 지금 남아있는 전각들 대부분은 청나라 때 중건되었다고 한다.





궁궐을 하나하나 돌아설 때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궁궐 문턱을 넘을 때마다 끝없이 펼쳐진 장대한 규모의 축조건물, 수만 개의 돌조각들로부터 탄성이 절로 터져나온다. 600여년의 역사와 수많은 전란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완벽한 조형미와 뛰어난 기능성, 상징성 등을 갖추고 있어, 가히 중국 건축예술의 최고의 걸작품이라 할만하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사신으로 이곳을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과거, 조공을 받는 이웃나라들에게 저절로 무릎을 꿇리게 하기 위해 이토록 어마어마한 규모의 궁궐을 만들었을 것이다. 특히 72만㎡의 넓은 이 궁궐 안에서도 황제의 시해를 우려해 아래로는 15장의 벽돌로 바닥을 덮고, 위로는 한 그루의 나무도 심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자금성은 북경의 평균기온보다 10℃정도는 높다고 한다.

어쨌든, 한 마디로 세계적인 권위와 자존을 상징하는 인공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은 자금성은 분명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자금성의 그 엄청난 규모의 축조물을 보며, 신의 영역에 도전하기 위한 불사를 갈망했던 시황제의 경우에서 보듯, 황제들의 그 무모함과 절대적 권위로 인한 압정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우울해진다.

또한 평생을 갇혀 살 최고의 건축물을 만들어 놓고 스스로 갇혀 살면서도, 치열한 권력의 암투와 끊이지 않았을 골육상쟁의 비극으로 치를 떨기도 했을 황제와 그 가족들, 그리고 고독과 외로움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을 황제주변의 수많은 여인네들의 삶을 생각하며, 인간적인 삶의 측면에서는 가장 비참했었을 수도 있었으리라는
생각에, 새삼 삶의 의미를 반추하게 된다.

■ 춘절-세계 문화유산으로 만들려 한다

우리가 묵은 곳은 용화장 호텔이다. 낮에도 식당이나 관광지 가는 길목에 시내 길목 어귀등지에서 폭죽을 터뜨리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저녁시간엔 이따금씩 우팍팍 터뜨려지는 폭죽에 소스라치곤 한다.

용화장 호텔에서 3일 내내 묵었는데, 저녁마다 폭죽소리는 예외 없이 우리를 놀라게 하곤한다. 귀신을 쫓고 풍년을 기원하며, 명절 분위기를 돋우는 의미가 있다는 폭죽놀이. 창문을 열면 밤하늘로 불꽃이 솟구쳐 오르는 불꽃놀이용 폭죽도 보이지만, 소리가 마치 기관총 소리같이 계속해서 요란하게 터지는 폭음의 폭죽이 연이어 터드려지는 경우가 더 많다.

가이드 황에 의하면, 본래는 섣달 그믐날 자정에 집집마다 폭죽을 터뜨리는 게 풍습인데, 근래 들어 춘절기간 내내 폭죽을 터뜨리며 명절 분위기를 낸단다. 그리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폭죽은 화려한 불꽃용 폭죽보다는, 귀신을 쫓는 데 이용되는 폭음을 더 귀히 여기고 해서 불꽃놀이용보다는 소리가 요란한 폭죽을 더 선호한단다. 소리 나는 폭죽은 1천발에서 4천발까지 기관총 탄창같이 생긴 띠로 된 붉은색의 폭음용 폭죽이라고.

중국인들이 폭죽을 즐긴 지는 오래되었다고 한다. 고대 중국인들은 짐승을 쫓기 위해 폭발음을 내며 연기를 내는 폭죽을 사용했고, 당나라 때는 전염병이 퍼지자 '이전'이라는 사람이 대나무 속에 유황을 넣고 불 속에 대나무를 던져 전염병을 물리쳤다고 알려지면서 폭죽이 더욱 유행했다고 한다.

최근에 와서 중국인들이 폭죽놀이를 즐기는 이유는 바뀐다. 이제는 1년을 돌아보고 복을 받기 위해서 폭죽을 터뜨린다. 폭음 소리로 귀신을 쫓아버리고 가족의 평안과 하는 사업, 일에 행운이 오기를 비는 마음으로 즐긴단다.





춘절은 우리처럼 그들에게 가장 큰 명절이다. 이채로운 것은 집집마다‘복(福)’자를 집 대문이나 현관문에 거꾸로 부치는 풍속이다. 일종의 복을 비는 부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에 있는 중국 요리 집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풍습이다.

'복이 왔다(到福)’의 발음과 ‘복자가 거꾸로 되었다(倒福)’의 발음이 ‘따오 푸’로 같기 때문이라고. 이튿날, 북경의 삼륜 자전거를 타고 북경의 뒷골목을 돌아다녀보기도 했는데, 집집마다 대문에 ‘복(福)’자를 거꾸로 부쳐놓고 있었다.


중국 문물국 홈페이지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신청 예비명단 35개가 열거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와 비교할 수조차 없다. 그 광대한 땅과 동양문명의 주류를 창출해 온 그들이므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고 남을 자원도 그만큼 풍부하고 다양하리라. 그런데 무형문화재인 ‘비물질 문화유산’의 국가 목록의 민속분야 제1순위에 춘절을 비롯한 청명절, 단오절, 칠석절, 중추절 등의 절기문화가 나열되어 있다고 한다.

중국과 동일한 한자문화, 유불선 문화권에 속한 우리의 전통에도 그들과 거의 유사한 문화적 전통들(절기문화)이 적어도 20세기 초반에는 계승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어찌 됐는가. 죄다 사장시켜버리고 말았다. 수 세기 전부터 내려온 우리의 절기문화 유산들을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 사장시켜버리고 이제는 민속경연대회서나 무대공연으로, 또는 TV 문화프로에서 감상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그 문화들은 물론 상당부분 변색되고 윤색돼 있겠지만, 오늘을 지나 내일의 문화로까지 영속성을 부여한다. 우리는 어제를 묻혀버렸지만, 그들은 어제의 기반 위에서 오늘을 살고 또 내일을 만들어 간다. 지금 우리는 몇 년째 답보하며, 미래의 비전마저 불투명하지만, 그들은 강한 비전을 만들어 오고 있다. 그들은 강하게 솟구치며 날아오르고 있다. 세계가 무섭게 강국으로 치받고 올라오는 중국을 놀라운 눈으로 본다.

우리와 중국의 차이는, 즉 이데올로기를 떠나 그리고 광대한 땅과 자원, 손바닥만한 땅과 자원과의 차이를 떠나 역사의식이 다르다. 우리는 망각하고 잊으려 하는 것들을 그들은 다시 주워 모아 새로운 것으로 만들려 한다. 우리가 놓치고 포기해 버린 우리의 古土마저 그들이 날름 삼켜버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 같을 수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우리가 중국에 와 감탄만하고 갈 일만은 아니다. 그들의 역사의식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문화를 영속토록 생존케 하는 그들만의 지혜를 아프게 배워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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