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온 나라를 혼란스럽게 했던 한미 FTA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지킬 것은 지키겠다. 손해 보는 FTA는 하지 않겠다던 협상이 어떤 내용으로 추진되었는지 아는 국민은 거의 없다. 심지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도 알지 못하고 있다. 지금 국회 앞에서는 국회의원들의 단식이 진행되고 나 자신도 여기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정치적인 쇼라고 비난하여도 좋다. 국회가 진정 국민의 대의기관이자 입법기관이라면, 한미 FTA 졸속협상의 문제점을 제대로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나는 정부의 한미 FTA 추진 발표 때부터 일관되게 졸속추진을 반대해 왔다. 중국과 일본보다 후순위였던 미국과의 FTA는 준비가 안 된 협상이고, 미국의 협상시한에 맞춘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나는 한미 FTA 연구 47건 중 절반이 넘는 24건이 지난해부터 추진되었음을 밝혀냈다. 졸속추진인 것이다.

9월에는 여야 국회의원 23명과 함께 헌법에 보장된 국회의 조약 체결·비준에 관한 동의권을 박탈했다는 취지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아직 아무런 결정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 협정초안을 국회의원들에게 공개하라는 민노당 의원들의 소송은 국가이익의 중대한 침해가 우려된다며 공개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아는 것이 국익을 해치는 것이라면 국익은 누가 지킨다는 것인가? 더구나 국회에서는 통상절차법이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결국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을 모른 채 국회의원들은 또다시 "예", "아니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시험대에 오르기를 정부로부터 강요받게 될 뿐이다. 내용적으로도 한미 FTA 협상에서 중요한 것으로 지적돼 온 쌀과 쇠고기 등 농산물 문제, 의약품 관련 소비자 보호문제 등 국민의 건강과 생존에 직접 관련된 사항들이 우리 국민의 뜻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 협상목표였던 개성공단 제품의 국내산 인정문제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미국 투자자와 투기꾼에게 한국의 입법․사법․행정까지도 재판의 대상이 되어 우리나라의 경제와 헌법은 무력화 되고 만다. 그래서 마지막 협상이 열리는 지금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몸으로라도 졸속협상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손해되는 한미 FTA는 자신만이 할 수 있으며, 한미 FTA를 통해 농업을 구조조정하자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 자신은 정치적 승부를 걸고 임기 안에 한미 FTA를 추진해놓고 물러나면 그만이지만, 자신의 실패와 분열된 민주주의의 기반이 평화개혁세력 전체의 잘못으로 오해받고, 우리농촌을 몰락의 길로 내몰아도 괜찮다는 것인가?

한미 FTA가 체결되면 한국의 농촌과 지역은 존재의 근거를 완전히 박탈당하게 된다. 우리의 뿌리를 잃는 것이다. 한미 FTA는 국민생활 전체를 규정하는 법률행위이자, 각 산업부문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제도변화이다. 반드시 광범위한 국민적 동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과 FTA 체결을 추진하던 말레이시아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협상을 중단한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광범위한 국민적 동의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비준을 받지 못 할 협상은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

미국의 협상시한에 맞춰 우리의 이익과 주장을 제대로 내세우지 못하는 협상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미 FTA 협상 중단이라는 대통령의 용기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거대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승부에 피 흘려 지켜온 민주주의의 역사와 온 국민의 생명을 걸지 않기를 다시한번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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