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2007-04-03 15:04/마동욱기자

◀2007년 3월30일 전남 장흥군 장흥문화예술회관 천년학 시사회에 참석한 관객들이 영화가 상영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장흥에 산다는 것 그리고 장흥이 고향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아니 문화 예술적인 측면으로 보았을 때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대한민국 최남단인 이곳 장흥의 시골촌에서 100번째 영화를 만든 우리나라 최고의 영화감독 임권택 감독과 내가 가장 존경하는 정일성 촬영감독을 함께 마주했으니 말이다. 그 자리엔 이청준 작가가 있었고, 시인 김영남이 있었으며, 한국화가 김선두 화백이 함께 했다. 지난 3월 30일 이곳 장흥에서 임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 시사회가 열렸다.

◀2007년 3월 장흥문화예술회관 왼쪽부터 김인규장흥군수 임권택 감독, 정일성감독, 이청준작가

이날 시사회는 매우 유감스럽게 취소되었다. 그러나 차라리 취소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여년 전 임 감독은 이곳 장흥 용산면 남포에서 영화 <축제>를 이 작가와 함께 촬영했다. 그리고 장흥군민회관에서 <축제>를 무료로 상영했다.

영화 촬영에 몸을 아끼지 않고 협조해준 장흥군민과 영화 원작을 그린 이 작가에 대한 배려였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축제>가 상영되던 날 임 감독과 정 감독은 깜짝 놀랐다. 이날의 충격은 두 사람 뿐만 아니라 큰 기대를 갖고 찾아온 장흥군민들에게도 실망을 안겨줘 영화가 상영되는 중 일부 관객들이 상영장을 빠져 나가는 작은 소동도 있었다.

사연인즉, 그날 상영된 영화 화면이 너무 어둡고 칙칙하여 도저히 자신들이 만든 영화라고 할 수가 없었던 것. 이 일로 임 감독과 촬영을 맡은 정 감독 역시 일생일대의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천년학> 시사회에 앞서 영사기에 걸고 시험을 하는 중, 그때의 일이 재현된 것이다. 관계자들은 도저히 영화를 상영할 수 없다고 판단, 상영을 취소했다.

◀2007년3월 천년학 상영을 못하게되었다며, 이유를 설명하는 정일성촬영감독

<천년학> 제작을 맡은 키노2 김종원 대표는 "3일 서울 시사회와 12일 서울 개봉을 앞둔 영화의 첫 시사회를 원작자와 촬영에 도움을 준 장흥군민을 배려하기 위해 이곳에서 열려고 했다"고 밝히며 그러나 "광주에서 가져온 영사기의 밝기가 매우 어둡고, 스크린과 영사기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 낮 장면이 밤 장면이 되고 밤 장면은 보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를 촬영한 정 감독 역시 무척 당황하시며 <축제> 상영 때가 떠올라 장흥군 관계자와 함께 긴급회의를 열어 시사회를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다"면서 장흥군민의 넓은 양해를 부탁했다.

◀2007년 3월 명예장흥군민증과 장흥산 도자기를 선물받고 있는 임감독과 정감독 그리고 제작사 키노 2 김종원대표

이날 시사회 장에는 장흥군민과 영화 촬영에 도움을 준 인근 주민들 600여명이 참석했다. 시사회는 취소 되었지만 장흥군은 <천년학> 감독을 맡은 임 감독과 촬영을 맡은 정 감독 그리고 주연을 맡은 오정해씨와 조재현씨에게 명예군민증과 장흥에서 생산된 도자기를 선물했다. 그러나 영화에 출연한 주연배우는 스케줄 조율이 안돼 직접 참석하지는 못했다.

시사회가 취소되고 장흥군에서는 장흥군버스를 이용하여 <천년학> 세트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 길에서 임 감독은 천천히 <천년학>에 대한 말을 이어갔다.

◀2007년 3월 시사회가 끝나고 셋트장으로 옮겨가는 임권택 감독 팬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서편제>가 소리와 영상으로 그린 한폭의 한국화라면 <천년학>은 눈먼 소리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남도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엮어낸 <서편제>와는 또 다른 한국냄새 물씬 풍기는 멋스러운 영화"라고 설명했다.

100번째 영화에 대한 의미를 묻는 질문에 그는 "뭐 노상하는 일인데…. 유럽에서는 노장 감독이 많은데, 우리 한국에서는 뭐 다 떠나고, 나 혼자 이렇게 현장에 남게 된 것 같아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것 같은데…. 이번 영화는 그 어떤 영화보다 더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청준 작가와 이곳 장흥의 특별한 인연을 묻자, 그는 "오래 전에 이곳 장흥 출신인 한승원 작가의 <아제 아제 바라아제>를 영화로 만들었고, 이청준 작가와는 <서편제>, <축제>를 이곳 장흥에서 촬영했다. 그건 이곳 장흥에 고향을 둔 작가들이 많고, 한국의 풍류와 멋을 몸으로 느낄 수 있으며, 남도땅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2007년 3월 순천대 문창과 학생들과 동행한 이청준작가가 김선두화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회진면 산저리 <천년학> 세트장에 도착하여 순천대 문창과 학생들과 함께 동행 하고 있는 이 작가는 학생들에게 문학과 영화에 대한 현장 수업을 하고 있었다. 장흥은 문학을 하거나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부러운 땅이다.

회진면 산저리는 이 작가가 그렸던 <선학동 나그네>의 바다처럼 아름다운 바다를 가졌었지만,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예전과는 너무 달라졌다는 임 감독. <선학동 나그네>를 읽고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임 감독도 10여년 전에는 이 작가의 그림을 영상으로 표현할 수 없어 포기했더랬다. 그러나 컴퓨터그래픽 기술이 발달하여 이번 <천년학>에서 바닷물이 들고 나가는 장면이 너무 잘 만들어졌다고.

◀2007년 3월 회진면 선자리 셋트장에서 김기홍장흥문화원장과 정일성촬영감독

2007년 3월 회진면 선자리 셋트장에서 김기홍장흥문화원장과 정일성촬영감독

회진면 앞바다는 이청준과 한승원이라는 거목의 작가를 탄생시킨 바다다. 이 작가는 회진면 진목리에서의 유년의 시절을 보냈고, 한 작가는 회진면 덕도 지금의 신상리 앞바다에서 젊은 청년시절을 보냈다. 회진의 바다는 매우 풍요롭고 기름진 갯벌이며, 회진의 바닷가 사람들의 삶도 그만큼 끈끈하고 질긴 삶을 살아왔다.

영화가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앞둔 산저리 일대는 4만여평의 보리나 밀을 재배했던 밭들이 노오란 유채밭으로 변했다. 산저리 이장 최기홍씨는 영화가 개봉되고 나면 사람들이 세트장을 찾아올 것 같아 작년 10월부터 이곳에 마을사람들과 함께 유채밭을 조성했다고 한다.

2007년 3월 회진면 선자리 천년학 셋트장과 멀리 선학동이 보인다. 높게 솟은 산봉리가 학이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라고 평소 이청준작가는 말했다.

유채밭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선학동 사람들이 유채밭 중앙에 만들어놓은 오두막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천년학> 이야기를 나누고 이청준의 <선학동 나그네>를 말했다.

임 감독과 김인규 장흥군수, 김기홍 장흥문화원장과 마을 이장은 오두막에 <선학동 나그네>라는 간판을 달고 소리를 할 줄 아는 아주머니가 막걸리를 팔면 장사가 썩 잘될 것 같다는 농담을 던졌다. 마을 주민들은 이를 진담으로 듣고 꼭 그렇게 준비하겠다고 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임 감독은 영화가 상영되지 못한 미안함을 설명했고, 자신의 작품이 최상의 조건에서 아름다운 영상으로 표현하고자 한 판소리와 한국의 멋을 감칠나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2007년 3월 회진면 선자리 선학동마을 작년 10월부터 영화개봉을 앞두고 찾아올 손님들을 위해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유채밭을 조성했다고 한다.

비록 <천년학>을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늦은 시간까지 임 감독 일행과 함께 하면서 영화와 문학 그리고 장흥 이야기를 들으며 이날 <천년학> 시사회가 불발된 것이 나에게는 차라리 위안이 되었다.

난 장흥사람이며, 장흥에서 제작된 영화가 흥행에 꼭 성공하고, 한국의 멋스러움이 세계에 널리 퍼져나가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날 동행한 김선두 화백은 이달 18일 서울에서 <천년학>, <선학동 나그네>의 소재가 되었던 남도 땅을 그림으로 담은 작품으로 한 권의 그림책을 출간하며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장흥은 참으로 행복한 땅이다. 그림이 있고, 소설이 있고, 시가 있으며, 풍류가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진정 행복함은 이땅 장흥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뜨거운 열정과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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