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4일 오후 3시, 관산읍 평촌마을 회관에서 아주 진귀한 이벤트 행사가 열렸다. 장흥출신의 원로동양화 小千 金千斗옹과 소천선생의 두 아들이며 한국화가인 善斗,善日 형제의 그림전이 열린 것이다. 이미 이 그림전 초청장이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배달되었을 것이므로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평촌 마을에서 회관 창고로 사용됐던 건물을 ‘소천미술전시관’으로 만들고 김선두 3부자 그림을 전시하 고 그 그림전을 이번에 오픈한다는 것쯤으로. 필자도 그렇게 알고 시간에 맞춰 찾아간 걸음이었다.

마을 전면으로는 국도 23호선이 지나고 그 국도 건너편으로 아담한 형상의 천관산이 누워 있다. 아마 그 천관산의 정기를 이어받아서였을까. 김선두 화가 3부자 모두 이 마을 출신이다. 이들 3부자 외에도 이 마을에서는 화가들이 16명이나 배출되었다고 한다.

그런저런 이유로, 특히 국내에서도 3부자 화가는 매우 희귀한 일인 바, 이 마을에서는 이들 3부자를 기념할 겸해서 별로 활용되지 않은 공간을 제공해 3부자의 대표격인 소천선생의 미술기념실로 만들려 한 것은 매우 가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날 행사 사회자도 ‘이런 일은 전국에서 최초의 일’이라고 그 의미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때문인지, 이날 제법 관내 인사들이 모이기도 했다. 군의원은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지만, 유선호국회의원, 김인규군수, 김기홍문화원장, 김창남도의원, 한승원작가, 김재중기획실장, 한봉준안양면장. 김석중 작가 등등, 그런대로의 면면들이 보였으며, 문화원 직원등 해서 모두 40여명쯤 모였다. 그런데도 괴이쩍게도 마을사람들은 불과 몇 분에 불과했다.

그림전 개관 테잎을 커팅하고 손님들이 들어갔고, 80노구의 몸을 이끌고 고향을 찾아온 소천선생은 작품 하나하나 일일이 설명했다. 건물의 외양은 보통 창고식 건물이었다. 12평 남짓되는 실내에는 30여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소천선생의 작품 15점, 김선두 화가 8점, 김선일 화가의 작품 7점이었다. 키 높이 쯤으로 듬성듬성 창(80㎝×50㎝정도)이 나 있고 바닥은 콘크리트 바닥이었다. 1m 높이쯤으로 벽에 그림걸이를 늘어뜨려 작품들을 걸었는데, 천정에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등도, 조명시설도 없었다.

그러나 전시된 작품들이 3부자의 수준급 작품들이어서 손님들은 소천선생의 그림설명을 귀담아 듣기도 하고, 여기저기 찬찬히 둘러보며 그림들을 감상했다.

그리고 4시쯤 군수 등 인사들이 현장을 떠났고 조금 후에는 마을사람 몇 분, 문화원 관계자 몇 분, 그리고 소천선생 두 부자만 남았다.(김선두화가는 4월 18일부터 24일까지 서울인사아트센터에서 갖는 ‘모든 길이 노래더라-그림 문학 영화와의 만남 김선두전’ 준비로 내려오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김선일씨는 그림을 모두 내려 자동차에 싣고 서둘러 고향을 떠났다.

당초 그림전은 4월 15일부터 5월 2일까지였다. 그런 내용의 초청엽서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내기까지 했다. 그런데 왜 서둘러 초대시간만 넘기고 그림들을 죄다 철거해 평촌을 떠났을까. 얼핏 보기에 헤프닝도 이런 헤프닝이 있을까 싶다.

문제는 그림전이 열리는 그 공간이 그림전을 계속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는 데 있었다. 경보장치등 보안장치가 마련돼 있는 것도, 그림전을 할 수 있는 조명시설이 구비돼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 바닥은 콘크리트 바닥 그대로여서 밑에서 올라오는 습기는 자칫 그림을 훼손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림전시실의 관리 책임자가 없었다. 당초 평촌마을 이장이 주선해서 이뤄진 일이었는데, 그 이장은 해외여행을 떠나고 없었고, 그렇다고 마을 다른 분에게 책임을 맡긴 것도 아니었다. 또 그림 도난방지시설도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였고, 마을사람들은 모두 나몰라라 하는 형편이어 단 하룻밤도 그곳에 그림을 남겨둘 수 없었다는 게 김선일 화가의 말이었다. 왜, 처음부터 보안시설이며 조명시설들을 완전히 구비한 상태에서 그림전을 개최하지 않고 서둘렀을까. 김선일 측은 준비 기간도 충분했고, 수차 바닥처리며 조명시설이며, 보안시설을 갖추라고 했는데도, 거기에 소요되는 2백만원 상당의 비용도 자신들이 지불하겠다고 했는데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장흥군민에게 서운한 일이지만, 그 상태에서 그림을 철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금 누구에게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해외에 나가 있는 마을이장이 돌아오면 정확한 사유를 알 수 있긴 하겠지만, 결과만 놓고보더라도, 마을 측에서 잘못한 점이 많은 것 같다.

문화 이벤트는 의욕만 가지고, 또 아무나 할 수 일이 아니다. 문화적인 마이드가 기본이 되어야 하고 세심한 계획아래 추진돼야 한다. 이번 일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 무책임하게 벌린, 문림의 고을 장흥에서 일어난 매우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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