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마동욱기자/2007-05-12

▲ 2007년 5월 매형이 만든 짚풀공예품 처음엔 예쁘게 나오지 않아

애간장을 태웠는데, 이제 제법 예쁘게 나온다고 자랑을 했다.

지난 9일 장흥읍 월평리 마을을 찾았다. 월평리 마을은 장흥읍에서 4km 정도 떨어진 들판 한가운데 자리한 마을이다. 단일마을로 20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장흥읍에서 가장 큰 마을이기도 한 마을이다. 그러나 현재는 빈 집이 많고 130여호가 주로 논농사를 하며 살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로 찾아가 한참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내게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왔다. 가까이 보니 월평마을에 살고 있는 사촌 매형 이상호(70)씨다.

▲ 2007년 5월 토요시장에도 내놓지 않은 아껴놓은 작품이라며

소중하게 간직했던 작품들을 가슴가득 가지고 나왔다.

매형은 사진을 촬영하는 내게 월평마을을 안내하면서 일일이 설명을 덧붙였다. 월평마을에서 가장 좋은 집이 있다며 빈 집으로 남아있는 큰 기와집도 안내했다.

"이씨집인데 우리 친척이여. 거시기 6·25 전쟁 끝나고 지었제, 자응지역 산은 모두 댕기면서 참말로 좋은 나무들만 골라갔고 지었는디, 얼마전까지 동생이 집을 관리하다가 광주로 갔제, 인자 사람이 없쓴께, 잡초만 무성하네."

잘 지어진 한옥이 옛날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매형이 안내해준 한옥은 처음에 만든 모습 그대로 훼손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 2007년 5월 "이라고 짚이나 풀들을 잘 다듬어갔고 새끼를 꼬여서 엮으면

작품이 되제, 사각작품이나 삼각 작품은 아즉 나말고 잘하는 사람을 못봤제,

하며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다."

마을 곳곳을 사진 촬영하고 돌아서는 내게 매형은 덧붙였다.

"우리 집으로 가믄 어짜것는가, 내가 자네 한테 보여줄 것이 있는디, 그랑께 벌써 3년 째 돼 부럿네, 장흥 토요시장이 맹글어져 갔고, 소일삼아 일 없을 때 쬐끔씩 맹근 것이 군에서 알고 토요시장에서 직접 맹글면서 팔아보라고 해, 팔고 있는디, 꽤 잘 팔린당께."

매형께선 누나는 유치로 일하러 가서 집에 없다면서 말을 이어갔다.

"인자 그라고 군에서 한 달에 20만원씩 지원도 해주네, 내가 맹근 것들이 도시에서 온 사람들한테 솔찬히 인기가 있어븐께, 많이 맹글았으믄 한디, 워낙에 시간이 많이 들제, 한 개 맹글라믄 3-4일이 보통 이랑께."

▲ 2007년 5월 "이라고 색상이 있는 것은 논둑에 있는

조리풀과 수수등을 이용하제, 염색공장에서 짚을

염색을 할라고 그라고 애를 썼는디, 못했다네."

짚 풀 공예품의 아름다운 색상을 찾기 위해

그는 풀이면 풀을 모두 시험 해본다고 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매형은 가슴 가득 그동안 아껴놓은 짚풀 공예품들을 들고 나왔다.

"요것들은 참말로 애껴 놓았는디, 전시 머시기한데 내놓을라고 놔돗제, 작년에 나주 농업박람회 대회에서 표돌이를 맹글어 내놓아갔고 솜씨상을 받았는디, 상금이 10만원 나왔는디, 친구들과 15만원 술 먹어부럿제, 자네 누나가 참 잘한 일이라고 하데, 돈 벌라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돈이 쬐끔씩 되고 있쓴께 재미가 있당께.'

매형은 하나씩 설명을 하며 자신의 작품을 자랑했다. 사촌 매형은 7살 어린나이에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무척 고생하며 살았다. 누나와 결혼을 하고 군 입대 영장이 나와 군대에 갔다가, 논산 훈련소에서 엄지 발가락 하나가 절단이 되어 돌아왔다.

매형은 평생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보지 않고 오직 땅을 파는 고된 농부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월평마을에서 가장 부지런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며 70세 고령의 나이에도 일손을 놓지 않고 농사일을 하신다. 늦은 나이에 젊었을 때 만들었던 짚 풀 가재도구를 공예품으로 승화시키는데 성공을 했다.




▲ 2007년 5월 논둑에서 자라는 조리풀은 아주 가늘고 질긴 풀이다.

풀잎 하나하나를 곱게 다듬어 4-5일동안 고생해서 만든 그의 작품은

약 4-5만원에 팔리고 있다. 하루 일당을 계산한다며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은 가격이 비싸다고 한다고 그는 서운해 했다.

"작년 일년 동안 100만원을 넘게 팔아부럿제, 올해는 군에서 갖고 나오라고 해서 그동안 맹글어 놓은 것 내 속으로 60만원 정도 될 거라 했는디, 20만원 주면서 어쩌겠냐고 해서 그냥 줘부럿제, 요런데 사람들은 잘 안사 관광객들이 와야 잘 사제, 짚은 다 좋은디, 여름에 습기가 차면 곰팡이가 종종 생겨, 그란디 볼래 짚은 그란께, 햇빛에 말리면 깨끗해지고 색상이 더 좋아지제, 짚은 10년 정도 묵혀야 제 색깔이 나불제, 짚은 묵히면 묵힐수록 삼이 된다고 옛날부터 그랬제.'


▲ 2007년 5월 꽃병과 주전자, 연필꽂이 등 그의 작품은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짚에 대한 매형의 애정은 끝이 없다. 그는 짚 풀 공예품 색깔을 내기위해 색상이 있는 풀과 수수등 밭에서 재배하는 농작물의 잎을 이용하고 있었다. 매형의 끝없는 짚 풀 공예품 연구는 짚을 소금물에 절이거나 짚 중에서도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친환경 벼 짚만을 고집하며, 더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나름의 연구를 지속하고 있었다.

▲ 2007년 5월 처음엔 오직 짚으로만 만들었는데, 색상을 넣기위해 들에서

자라는 풀을 이용하여 단조로운 색상에 깔라를 섞어 넣었다. 그의 짚 풀 공예는

이제 장흥의 토용시장에서 명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큰 수익은 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 2007년 5월 2006년도에 그가 받은 상장 상금은 이미 친구들을 위해

쓰여지고 상장이 남아있다.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평생동안

그의 삶에서 상장이 주는 기쁨은 무척이나 클것이다.




▲ 2007년 5월 공예품 중간에 빨간색을 넣기 위해 수수잎을 잘

다듬어 사용한다며 수수잎을 보여주었다.




▲ 2007년 5월 그의작품들과 재료들 단순한 짚이나 풀들이

그를 만나면 공예품을 만든 그의 작품 재료로 재 탄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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