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에 잠에서 깨웠습니다. 너무 일찍 길을 나서기가 조금은 두려워 5시가 다되어 호텔을 나와 길거리를 걸었습니다. 한국의 산적한 일거리와 인생에서 너무 많이 진 무거운 짐들을 잠시동안이라도 잊고 아무도 알아보는 이 없는 낮선 땅에서 너무나 버겁게 진 짐들을 벗고자 했습니다. 상당히 빠른 시간임에도 베트남 사람들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조금이라도 더 피하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일을 한다고 합니다.
지난 4월 24일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린 전남 신안에서 왓다는 전성호(45)씨와 베트남 깐터성의 농촌 처녀 아니 새신부 누엔티우(25)씨도 같은 호텔에서 만났다. 신부가 아직 한국으로 입국을 못했고, 이번에 신랑이 방문 한 것은 신부를 데려가기위해 한국 영사관에서 인터뷰를 한다고 한다. 신랑은 다음 날 인터뷰를 하고 4일째 되던 날 혼자서 언제 돌아오게 될지 모른 새 신부를 기다리게 될 것이라며 하루라도 빨리 신부가 한국으로 돌아왓으면 한다고 했다. 새 신랑 신부는 대부분의 시간을 호텔방에서 꼼짝없이 나오지 않았고, 신랑이 다음날 아침 신부가 먹고 싶다며 한국 김밥을 구해와 호텔방으로 들어 갔다.
45살 농촌 촌각은 신부가 너무 좋다며 어쩔줄을 몰라 했다. 한국에 입국하면 행복하게 잘 살겠다고 다짐을 했다.
맹골로 섬으로 가는 보트에서 새신랑과 신부는 꼭 붙여있었다.
호치민 외곽에는 이렇게 호화판 집들이 들어서고 있다. 베트남의 대부분의 부자들은 북부 월맹지역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고 가이드는 말해주었다. 하기야 패방국인 베트남 월남 사람들은 모든 재산을 모두 국가에 빼았겼고, 해방이 되면서 미국과 캐나다등으로 대부분 도망을 쳤고, 남은 자들은 수용소에 끌려가 1년에서 2년을 수용소에서 보내고 빈 털털이가 되었다고 한다. 베트남은 사회주의국가다. 힘있는자에게 재산과 입이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알게되었다. 전쟁의 승자들이 누리는 부는 오늘의 베트남을 더 많은 빈부차이를 느끼게 하고 있었다.
베트남에서 외국인은 자신의 이름으로 부동산을 갖거나 작은 장사나 사업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반드시 베트남 사람들을 앞세워 장사를 하거나 사업을 해야 한다고 한다. 자신의 이름으로 베트남의 토지나 부동산을 소유할 수 없는 사회주의 국가다, 외국의 기업과 국가들이 앞다투어 넘치는 인력을 이용하고자 베트남에 기업을 세우고 저임금을 노려 많은 돈을 벌고자 하지만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오직 베트남 정부만 알 것 같다.
바다의 육지 가까운 곳에서는 야자수잎으로 엮은 집들이 군데 군데 놓여있다. 집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고기를 잡는데 이용되기도 한다고 가이드는 설명해주었다.
배를 타고 40분쯤 달려서 도착한 맹골로게의 양식장 이곳에서 게를 낚으고 낚은 게를 2kg에 베트남 화폐 23만동을 주었다. 우리나라돈으로 약 15000원정도된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서로 책을 보며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하고 있는 새신랑 신부의 노력이 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