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의 원로작가 한승원이 전봉준을 새롭게 조명한 새 소설 <겨울잠, 봄꿈>을 펴냈다.

동학 혁명의 영웅 전봉준이 아닌 ‘인간 전봉준’을 그린 이 소설은 1894년 겨울 전봉준이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어 처형되기까지 119일간의 ‘전봉준 죽음의 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소설은 단숨에 읽혀졌다. 한승원의 소설에서 새 지평을 연 듯한 시적(詩的)인 문체, 간결하고 묘사가 생생하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에 그려지는 영상미의 문체, 그리고 과감한 장면전환 등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문장 구성이어서 흡인력이 강렬하다. 패장으로서 죽음의 길을 자처한 전봉준의 의식의 흐름도 재미를 더하게 한다.

전봉준을 붙잡아 서울로 호송하는 이토 겐지, 본래 장흥의 섬 출신이었으나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으로 신분을 바꾼 그를 통해, 자연스럽게 장흥의 동학, 탐진강 정자 이야기며, 이방언 장군, 억불산 며느리 바위, 당시 장흥 부사 고을의 만행과 수탈 등이 그려지면서 장흥은 이 소설에서 또 하나의 관심 있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과거 한승원은 장흥을 무대로 펼쳐진 동학군 최후의 항쟁을 담은 대하소설 ‘동학제’(1994)를 통해 동학농민전쟁을 한 차례 다룬 바 있다. 동학소설로 금자탑을 이루었던 ‘동학제’의 작가였던 것이다. 그는 또 수많은 불교 세계를 다룬 소설들을 펴냈으며 역사소설 ‘다산’을 펴내기도 했다.

해서 이 소설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전봉준의 생각’에는 동학 정신, 동학혁명의 봉기 이유와 실패 요인 등이 자연스럽게 조명되기도 하고 불교 정신, 다산 정신에 대한 표현도 아주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혁명에 실패한 인간 전봉준을, 그것도 죽음의 길로 가고 있는 ‘인간 전봉준’을 재조명 했다는 점에 특장점이 있다.

혁명에는 실패한 패장이었지만, 죽음의 길인 한양으로 압송되는 그에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사람들에게 다 하고 죽어야 한다”는 꿈이 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가 다 한울님이므로, 박해받거나 착취당하지 않고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는” 꿈을 만인들에 알리고 싶다는 꿈이었다.

이것은 영웅으로서 마지막 꿈일 터였다. 그러나 이 꿈은 전봉준을 죽이지 않고 살려 일본으로 데려가서 장차 조선방략에 요긴하게 쓰겠다는 이토 히로부미의 양자를 자처하는 이토의 끈질긴 회유에 자주 흔들리고 고민하게 한다.

또 한양으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일본군 병사들이 조선 백성들의 곡식을 빼앗고 닭과 돼지를 잡아 끼니를 해결하고, 가마꾼이 부상을 입거나 몸살 감기라도 걸려 쓸모가 없어지면 가차없이 처단하고 가까운 마을의 장정을 새로운 가마꾼으로 징발하는 일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일들이 전봉준을 괴롭힌다. 변비에 고통당하는 모습도 그를 괴롭히는 요인이었다.

이런 설정들은 ‘힘든 상황에서도 대의를 좇고 기개를 지킨 영웅 전봉준’이 아니다. 한양으로 압송되어가는 인간 전봉준을 처참하고 처절하게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전봉준이 죽음의 길 앞에서 만난,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깊은 회한과 절대고독에 다름 아닐 터이다.
패악 패정의 세상을 바꾸고자 갑오년에 봉기한 것이 동학혁명이었다.

오는 2014년은 다시 갑오년이다. 그러나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120년 전의 전봉준과 그의 이야기를 치열하게 재구성한 작가 한승원이 오늘 세상에 던지는 뜨거운 물음이다.

"작품을 읽으면 작가가 잔인하게 느껴질 겁니다. 제 속에 있는 악마성, 혹은 광기 같은 것이 이 작품을 쓰게 한 것 같아요. 소설 속의 참담한 상황을 만들어놓고 스스로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다산' 집필 당시 정약용에게 느꼈던 고독을 전봉준에게도 느꼈습니다. 압송돼 가면서 느꼈던 한 인간의 절대 고독이 저를 가슴 아프게 했어요. 또 그 절대 고독이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힘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노작가 한승원의 말이다.

노작가는 한국문단에서 가장 늘그막까지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희랍인 조르바'를 늙어서 썼어요. 그런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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