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흐른다. 흐르면서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오늘에 이어지고, 오늘이라는 총체적 정체성은 바로 어제의 역사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우리가 역사를 외면해서는 안 되고 그 역사를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오늘의 장흥이란 정체성은 무엇인가? 한때는 우리는 ‘아겨놓은 땅’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위안을 삼기도 했다. 70년대 이후 산업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근대화란 작업이 교통과 도시권을 중심으로 치중되면서 도시권역의 사각지대에 놓인 장흥은, ‘개발’이란 단어 자체가 아주 무관했었다. 그런데 생태환경이 중시되고 건강이며 웰빙이 우리 삶의 중심부로 옮겨오면서, 그 ‘아껴놓은 땅’ 장흥이 서서히 잠재적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제 장흥은 전남에서 외지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군이 되었다. 지난 2009년 2010년, 2011의 관광객 통계조사에서 밝혀진 바처럼, 외지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장흥이었다. 목포시는 물론이고, 순천시며, 남도 답사 1번지라고 자처한 강진군까지도, 그리고 여수 엑스포 이전까지의 여수시까지도 1년 외지 방문객은 연 6백만여 명에 불과했다. 장흥만이 연중 7백만 명을 넘어섰던 것이다.

지금은 8백만 명을 넘어섰을 것이다.
시대정신, 시대의 유행은 흐르며 변하기 마련이고, 그 변화의 원점에서 멀어지면 시대정신은 잊혀지고 자연 퇴락하는 게 순리다.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오직 역사성이며 전통이다. 오늘은 바로 그 역사와 전통 위에서 서게 마련이어서이다.

우리 장흥에 역사성이 잊혀져 가고 있다. 아니 무시당해 왔다. 장흥 읍성 터도 지키지 못했던 우리였다. 고싸움은 광산에 빼앗겼으며, 고인돌의 세계문화유산 등록도 빼앗겼다. 각 지방에 그 흔하게 산재한 박물관 하나 없어 장흥댐 수몰지에서 출토된 그 귀한 유물 수만 점도, 장동 신북의 후기 구석기 유물 3만 점도 대학박물관 지하에서 쳐박힌 채 먼지 뒤집어쓰고 잠들어 있다.

어쩌다, 경상북도 오지 중의 오지라 할 수 있는 영양군이라는 곳을 갔다. 거기서 조지훈 시인이 태어나 자라고 공부했던 주실마을이 있었는데, 마을 전체가 리모델링돼 있었고, 마을 주변 곳곳이 조지훈 시인의 시비며 동상이며 공원으로 꾸며져 있어, 영양군에서는 이미 명소중의 명소로 잘 알려져 있었다.

물론 조지훈 문학관도 있었고, 생가도 잘 복원돼 있었으며, 해마다 조지훈의 문학제가 열리면서 영양뿐만 아니라 인근의, 전국의 문학도들이 몰려들곤 한다고 했다. 영양군은 조지훈이라는 역사인물을 오늘에 끌어 와 오늘을 더욱 풍요롭게 ‘승(勝)’하게 하고 있었다.

지난 7월 25일 전주대학교에서 <국역 존재집>(6책)을 출간하는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이 <국역 존재집>발간은 장흥이나 위씨문중에서 지원해 이루어진 게 아니다.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와 (사)한국고전문화연구원가 교육부 지원으로 2011년부터 향후 30년 동안 추진하는 고전번역 협동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사업이며. 조선시대 호남지역 유학자들의 문집을 번역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그 첫 번째 사업으로 <국역 존재집>발간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장흥이 철저히 외면하고 장흥사람들이 관심두지 않았던 존재 선생을, 전주대학교 등의 학자들이 조선조 호남실학의 거봉이었던 존재선생을 오늘에 끌어내리는 조명사업으로 <국역 존재집>을 발간하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 한글 세대들도 <국역 존재집>을 통해 존재선생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위인이 장흥인이었다. 그 분의 생가도 현존하고 있으며, 그 분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방촌마을이며 장천재며, 천관산 구석구석이 모두 현존하고 있다.
이제 우리들이 할 일은 무엇인가? 그 분의 유고집을 집대성한 <국역 존재집>이 남의 힘에 의해 출간된 마당에,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의 할 일은 뻔하다. 그분 기일을 ‘존재의 날’로 제정하여, 전 장흥군민이 존재 선생을 기념하고, 그 분의 위업을 기리며, 그 분이 남기신 위업을 오늘에 되살리고, 그 분의 정신을 체득하면서 우리의 오늘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장흥의 정신’을 살찌우는 일이다. 어느곳에 존재공원도 만들 수도, 그 분의 문장이며 싯 귀를 새긴 석비들을 조성할 수도, 해마다 존재 학술 세미나를 열 수도, 다양한 문화적 이벤트도 열 수 있을 것이다.

남들이 그 분의 위업을 기리는 <국역 존재집>을 출간했듯, 이제는 우리가 존재선생을 위씨문중의 큰 어른이 아닌 장흥인의 큰 어른으로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의 장흥 역사에서 또 하나의 장흥의 신화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그 역사’에 오롯한 정신은 바로 우리의 변치 않는, 우리 후인들에게 영원한 삶의 전범이 될 터이고 더없이 훌륭한 자산이 될 것이다. 또 그것은 우리의 정신적인 무기며, 장흥의 정체성을 확인케 해주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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