付書瀋陽(부서심양) 북저 김류

큰 오동 잎 떨어지고 비까지 내리는데
국경 길은 수만 갈래 꿈속에서 헤매어
편지를 쓰려하여도 설음에서 울먹이네.

高梧葉落雨凄凄    塞路三千夢亦迷
고오엽낙우처처    새로삼천몽역미
欲向征人寄消息    一行書又萬行啼
욕향정인기소식    일행서우만행제

멀리 떠나 있는 사람에게,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은 여간한 정성이 없다면 보내기 어렵다. 큰마음을 먹어야 한다. 시인에게는 소중한 사람이 동복 삼성인 심양에 가있었던 모양이다. 요즈음 같이 우편제도가 잘 발달한 시대가 아니었음을 상기할 때 인편을 통한다는 것은 시간과 전달의 방법이 더딜 수밖에 없다. 키 큰 오동나무 잎이 떨어지고, 비가 내리는데 / 국경 길 수 만 갈래의 꿈 속에 헤맸다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한 줄 쓰는데 설음에 목이 메여 만 번을 울먹였네(付書瀋陽)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북저(北渚) 김류(金류:1571~*/1648)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1623년 인조반정 때 공을 세워, 정사공신이 되어 정치적 전성기를 맞았다. 병자호란 때에는 영의정으로서 최명길 등과 더불어 화의를 주장하여 왕이 항복하게 하였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문집으로 <북저집>이 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키 큰 오동나무 잎이 떨어지고, 비가 내리는데 / 국경 길 수 만 갈래의 꿈 속에 헤맸다오 // 이동해 가는 병정들에게 편지를 전하려고 해도 / 한 줄을 쓰는데 설음에 목 메여 만 번을 울먹였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글을 지어 심양으로 보냄]으로 의역해 본다. 심양은 중국 동복삼성의 중심도시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 변경에 살던 선현들이 이 지방을 개척하며 살았던 곳이다. 청나라가 이곳이 수도를 정하고 남으로 세력을 확장했을 때 우리는 많은 수탈을 받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심양으로 가서 공무를 보았던지 균역을 보았던 것 같다. 인편과 편지로 안부를 전하는 시대에 그 정을 담으려고 했다.
시인은 이런 점에 착안하여 심양에 있는 지인에게 한 줄 마음을 적는다. 선경의 시상에서 키 큰 오동나무 잎이 떨어지는 소소한 계절에 한 줄기 비까지 내리고 있는데, 국경 길은 수 만 갈래 꿈 속에서 헤매었다고 했다. 보고 싶은 마음, 사무치는 마음, 편지를 썼다가 또 지우는 일을 반복했었다는 시주머니과 너덜너덜 보이는 듯 하다.

화자는 이런 간절한 마음을 담아 결국 망서리던 글을 쓰게 되면서 자기의 심회 한 마디를 내뱉는다. 후정의 시상에서 이동하는 병정들에게 편지를 전하려해도,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마음의 설음 때문에 한 줄을 쓰는데 목이 메여 만 번을 울먹였다고 했다. 그 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오동잎 비 떨어지고 국경 길을 헤맸다오, 병정께 편지 전하여 해도 설음에 만 번 울먹였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高梧: 키가 크다. 葉落: 오동잎이 떨어지다. 雨凄凄: 비가 처처히 내리다. 塞路: 국경으로 가는 길. 三千夢: 삼천 번의 꿈. 亦迷: 또한 헤매다. // 欲向: 향하고자 하다. 이동하다. 征人: 병정들. 寄消息: 편지를 전하다. 一行: 한 줄, 書: 글을 쓰다. 又: 또. 다시. 萬行啼: 일만 번을 울다.<문학평론가ㆍ시조시인/사)한교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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