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마미아ㆍ아이다ㆍ시카고 수입-아리랑 등 대형 창작 뮤지컬도
 

◀차범석 원작 ‘산불’을 뮤지컬로 만든 ‘댄싱 섀도우’의 런던 워크숍에서. 왼쪽부터 고 차범석, 극작가 아리엘 도르프만, 작곡가 에릭 울프슨, 박명성.

-“프로듀서, 흥행 매몰되면 안돼
-성공과 실패 거듭한 도전의 길
-후배들에게 작은 참고 됐으면”


“정말 보잘것없는 글이지만, 신시 30년을 정리하고 자료를 남기자는 차원에서 펴냈습니다.” 박명성(56) 신시컴퍼니 대표가 책 ‘드림 프로듀서(DREAM PRODUCER·북하우스)’를 출간했다. 그의 말대로 책은 신시가 지난 30년간 만들어 온 연극과 뮤지컬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동시에 스무 살 때부터 공연 쪽에 발을 디딘, 자칭 ‘돈키호테 연극쟁이’의 파란만장한 행로가 펼쳐져 있다.

그는 부족한 문장 실력으로 책을 펴낸 것이 부끄럽다고 했으나, 읽다 보면 곳곳에 줄을 치게 된다. 이런 소감을 전하자, 그는 “대학생 딸이 하루 저녁에 다 읽었다고 하더라”며 슬쩍 자랑을 했다. 그와 함께 고생을 해 온 신시 식구들은 대체로 이런 독후감을 전해왔단다.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가 겪어야 했던 실패와 좌절을 끈기 있게 이겨온 길이 꿈만 같다.”

한국 공연계의 1세대 프로듀서인 그가 신시와 함께 이뤄낸 성과는 눈부시다. 국내 처음으로 정식 라이선스 계약을 한 ‘더 라이프’를 필두로 ‘맘마미아!’ ‘아이다’ ‘시카고’ ‘고스트’ ‘빌리 엘리어트’ ‘마틸다’ 등을 통해 한국 뮤지컬의 새 경지를 개척해왔다. ‘갬블러’로 국내 최초 일본 투어 공연을 했으며, ‘댄싱 섀도우’ ‘아리랑’ 등 대형 창작 뮤지컬을 만들었다. 무대예술의 뿌리인 연극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대극장 연극이 사라진 상황에서 국립극장 대극장에 ‘산불’을 올리고, 평균 나이 60세가 넘는 배우들로 ‘햄릿’을 시도해서 주목을 받았다.

이런 그가 쓴 350여 쪽의 장정본 책을 처음 접할 땐, 무용담을 늘어놓았을 것으로 짐작하기 쉽다. 그러나 책을 찬찬히 읽어보면 그가 성취를 과시하기 위해 이런 기록을 남기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축적된 노하우를 뒷사람에게 전하고픈 소망이 책에 절실히 담겨 있다.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작업의 전 과정과 뒷이야기를 소개하고 무대가 생생히 느껴지도록 사진도 최대한 실었다. 공연예술을 사랑하는 관객들에게는 즐거운 작품 기행이, 공연예술을 공부하는 예술학도들과 현장에서 뛰고 있는 프로듀서들에게는 아주 작은 참고가 되길 바란다.”

‘작은 참고’에의 소망은, 자신의 실패를 냉철하게 돌아보게 한다. 예컨대, 뮤지컬 ‘갬블러’의 재공연은 초연 성공에 대한 과신으로 무리하게 앞당겨 무대에 올린 탓에 망했다는 것. ‘댄싱 섀도우’의 경우, 역시 흥행에 실패했으나 후회하지 않았다는 게 그의 회고다. 해외 유명 아티스트와의 협업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우리 뮤지컬 수준을 높였다는 자부가 있는 덕분이다.
그가 1998년 ‘더 라이프’ 라이선스를 얻어내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당시 한국 공연계를 저작권 도둑쯤으로 여기고 있던 브로드웨이와 정식으로 계약을 하고, 6억8000만 원의 제작비를 들여서 국내 무대에 올렸던 도전 정신. 그것이 스스로 ‘미친 짓’이라고 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새로운 작품을 시도해 온 힘의 원천임을 책은 보여주고 있다.

그는 “프로듀서는 공연으로 돈을 벌지만 돈을 벌기 위해 공연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공연 제작자는 분명 사업가 속성을 지녀야 하지만, 그보다 앞서 예술을 한다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독하게 배고팠던 연극배우 시절을 달콤하게(?) 회상하는 그의 정서를 후배 제작자들이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티켓 파워가 있다고 해서 무대에 설 실력이 없는 아이돌 스타를 함부로 세우지 않아야 한다”는 말에는 공감할 것이다. 설령 따를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그는 이 책에서 대학 입시에 두 번 실패한 끝에 연극판으로 들어가고, 연극배우와 연출가로 입신하지 못해 프로듀서의 길을 걸었던 과정을 자세히 소개한다. 지금은 공연계를 대표하는 인물이 됐으니 힘든 시절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을 거라고 비뚜름하게 볼 수 있겠으나, 가던 길에서 넘어졌다가 일어나고 또 새로운 길을 찾았다가 반전을 만나는 여정은 퍽 흥미진진하다. 그 여정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그는 반복해서 되뇌며 고마움을 표한다. 차범석, 김상렬, 정우 스님, 박정자, 손숙, 김성녀, 김갑수, 허준호, 박칼린…. 이 책은 이들 각자에 대한 이야기를 단편 소설처럼 품고 있다.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프로듀서라는 일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게 그의 소신이다. 주연 배우 못지않게 앙상블과 스태프를 챙기는 까닭이다. 프로듀서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후배들에서부터 어른들까지 조율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가 내린 프로듀서의 정의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먼 꿈을 꾸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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