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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전통가무악전국제전 부활은 가능할까?정종순 군수 문화관광 분야 특별한 관심에 기대
백광준 기자  |  bbkj5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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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08  09:4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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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구(李書九 1754-1825년)는 조선시대의 문인으로 자는 낙서(洛瑞), 호는 척제이다. 정조 17년(1793년)과 순조 20년(1820년), 두 차례 전라감사를 지내면서 호남지방 여러 고을(54개)의 이름을 빌어 함평천지 ‘호남가’를 지었다.

호남가는 민중의 노래로 불리어 오다가 경복궁 낙성식(1867년)때 전라도 대표로 나가 장원하니 그때부터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한말(韓末)과 일제 치하에 고향을 그리는 향수로 나라 잃은 망국의 한(恨)을 달래는 비원(悲願)의 노래로 애창되어 왔다고 한다
‘호남가’ 가사를 살펴보면 이렇게 시작되면서 우리 장흥을 ‘태인(泰仁)하신 우리 성군 예악(聖君 禮樂)을 장흥(長興)하니’라고 부르고 있다.

다음은 ‘호남가’의 첫 대목부터 장흥을 노래한 부분까지를 발춰했다.
함평천지(咸平天地) 늙은 몸이 광주고향(光州故鄕)을 보려하고제주어선(濟州漁船)을 빌려 타고 해남(海南)으로 건너갈 제 흥양(興陽)에 돋은 해는 보성(寶城)에 비쳐있고,고산(高山)의 아침안개 영암(靈岩)에 둘러있다. 태인(泰仁)하신 우리 성군 예악(聖君 禮樂)을 장흥(長興)하니
‘호남가’에서 예악(禮樂)은 예법과 음악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서 과거 장흥 남산골에는 지금으로 말하면 국악교습소나 학원인 신청(神廳)에서 전국에 국악인을 교습 배출했으며, 여기서 학습한 최옥산(일명 최옥삼 )은 해방 후 전국을 순회하면서 공연을 하였고 6.25 이후 월북하여 북한과 소련 중국 연변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시고 모란봉 지하에서 한 많은 대동강을 바라보면서 장흥땅을 그리워하고 계신다. 최옥산 선생의 가야금 산조는 이 시대의 가야금 연주가들이라면 누구나 경전처럼 여기는 최고의 전통 음악의 명곡이다. 최옥산류 가야금 산조는 다스름,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늦은 자진모리, 자진모리, 휘모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단에는 우조, 계면조 외에 봉황조, 석화제, 생삼청, 경드름과 같은 악상 기호적인 조가 있다. 선생은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의 음악을 맡았고 북한 최초의 총천연색 영화 ‘춤추는 가얏고’의 음악감독으로도 유명하다. 우리 장흥에서는 선생을 몰라도 국악인들은 최옥산류의 가야금 산조 보존회 연주회 등을 전국 각지에서 개최하고 있으니 장흥인으로 참 부끄러운 일이다

장흥전통가무악전국제전 왜 폐지되었나?
 1999년 장흥전통가무악전국제전이 탄생되면서 특별상으로 최옥산 상을 제정하여 서편제의 본향 국악의 성지 장흥이 발전되는 듯 싶었으나 군의원들의 예산 삭감으로 16회를 마지막으로 폐지되어 지금은 신안군에서 ‘인동초 전국 국악 대전’으로 대회명을 변경하여 개최되고 있으니 가슴을 치고 통곡할 일이며 뜻있는 문화인들은 부활을 희망하는가 하면 이영권 전 국회의원은 장흥에 가장 가슴 아픈 일 두 가지가 있다면 하나는 남도대학 담양이전이요 두 번째는 대통령상의 ‘장흥전통가무악전국제전’폐지를 들고 있다.
대통령상의 국악대회를 개최한다는 문화적 자부심을 모르는 위정자들의 행위를 탓하면 무엇하리오마는 전통예술의 계승발전을 위한 경연대회를 경제 논리에 비교하여 흥행으로 정리하려는 착오였다는 생각이다.

서편제 보성소리 탄생과 용산 출신 정재근 선생
장흥군은 1억여원의 예산이 소요된다는 이유도 포함되어 어렵게 탄생한 ‘장흥전통가무악전국제전’을 폐지했는데도 보성군은 매년 예산을 늘려가면서(2019년 예산 4억7천5백만원) 올해로 22회 서편제보성소리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박유전(1835-1906)은 전북 순창 출신으로 판소리 유파의 하나인  서편제의 창시자이다. 그의 소리제도를 뒤에 생긴 서편제와 구별하기 위해 그가 살았던 보성군 강산리의(당시는 장흥군이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보성군이 되었음) 지역 이름을 따서 '강산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좋은 목소리를 타고나 고운 노래를 불렀는데, 후에 그의 소리를 '안구성'이라 했다. 특히 〈새타령〉으로 대원군의 총애를 받아 무과에 급제하기에 이르렀다. 장기는 〈적벽가〉·〈춘향가〉 중 '이별가'와 '새타령'이며 더늠은 '이별가'에 전한다. 그의 소리는 제자 이날치와 정재근·정응민을 거쳐 정권진에 이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어전 명창 정재근에 대하여 연구할 가치가 있다. 1860년대에 출생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정응민의 큰아버지이며, 이른바 보성소리의 개척자이다. 흥선대원군의 실각과 함께 낙향한  박유전을 모시고 전라남도 장흥에(지금은 보성 땅) 와서 살면서 그에게 소리를 배웠다고 한다.
하동 정씨인 정재근은 보성소리의 개척자이며 선생의 가계는 정응민 정권진 정회천(현 전북대학교 국악과 교수)에 이르고 있다.
정회천 교수는 증조부 정재근은 장흥 용산에서 보성으로 이사했다는 가승보가 있다면서 마을 이름이 없어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렇다면 보성소리의 개척자 정재근은 장흥 용산 출신임이 증명된 것이다. ‘장흥전통가무악전국제전’ 1회 홍보물을 보면 서편제의 본향은 장흥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그런 연유로 보성소리축제가 서편제 보성소리라고 부르지 서편제 본향이란 말은 쓰지 않는다. 이렇듯 우리 장흥은 소중한 문화유산을 잃고 있어 안타깝다.

문화관광으로 장흥발전 가능성
고싸움은 광주시 광산구로 사자산은 보성 일림산으로 제암산 철쭉제마저도 일림산 철쭉제의 도전을 받고 있으며 천관산 억새제도 강진만 춤추는 갈대축제에 밀리는 현실이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장흥군민은 긍정적 사고로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미래 농촌은 관광산업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외국을 여행한 사람이면 모두가 경험했겠지만 곳곳마다 지역의 전통을 자랑하는 문화예술 공연을 볼 수 있다. 때로는 낯설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전통을 관광객에게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신토불이’ 우리는 전통 국악의 맥을 살리고 장흥에 100년 대계를 지속 가능한 문화산업에서 찾아야 한다.
지금 장흥군은 ‘역사 향기 숲 테마 공원 조성 사업’(100억), 칠거리 토요시장 뒷골목 ’도시재생 뉴딜사업‘(155억), ’안중근의사 문화관광자원개발사업‘(70억)이 진행되고 있다. 여기서 방관해서는 안 될 것은 우리의 전통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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