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상생활에서 어떤 말을 가장 많이 하는가? 밥 먹었어? 사랑해. 미안해. 혹시 이런 말을 즐겨하지 않는가?
“피곤해!” 사실 이 세음 절을 현대인들은 한결 같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많은 이가 친구 등을 만났을 때 보자마자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귀찮아 죽겠어. 바빠. 아 피곤해” 이런 피곤함은 사는 형편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 그는 돈이 없어서 피곤하고 그녀는 돈이 있어 피곤하다. 그이는 권력이 없어서 피곤하고, 저이는 권력이 있어 피곤하다.
모두가 불안하고 복잡하고 답답한 심리상태를 끌어안고 인생을 살아간다.
때론, 꽉 막힌 콘크리트 건물 너머의 인공녹지를 바라보며 한 숨을 쉰다.
집과 회사 날마다 반복되는 출퇴근 동선을 직선으로 이어보면 우리의 삶은 척박하다 못해 무력사기 이를 데 없다.
통신 수단이 발달 할수록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는 점점 줄어든다.
집이 커질수록 활동공간은 오히려 협소 해졌다. 의료 기술의 속도를 앞지르려는 듯 질병은 더 증가했다.
수입은 올랐지만 행복감은 도리어 떨어졌다.
언론의 자유는 확대 되었지만 마음의 자유는 축소되었다. 계수나무 달에 닿을 수 있게 되었지만, 이웃 간 마음의 통로는 좁아지고 멀어져 간다.
그만큼 사랑도 퇴색하였고 상대에 대한 경계심만 커졌다.
열심히 만 살수록 무작정 신중해질수록 세상의 맛은 덤덤하고 인생은 힘들어진다. 행복과 멀어지는 삶은 당연히 마음을 피곤하게 한다. 그러니 즐겁지 않을 수밖에!
마음이 피곤해지는 직접적인 원인은 심리적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며 그 이유는 잡념이 많기 때문이다. 이 잡념은 좋은 생각과 부정적인 심리상태에서 비롯된다.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부정적인 악마는 우리의 영혼을 지옥에 빠뜨린다.
그렇다면 왜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할까? 바로 올바른 처방을 내리기 위해서다. 어느 철학자가 말하기를 인간의 마음은 어둡고 굴복할 줄 모르는 구멍 뚫린 항아리와 같다고 했다. 자신의 입에 모든 강물을 부어도 이내 목이 마르다. 아무리 큰 희망도 그것을 채워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가장 큰 절망으로 채워질 것인가? 그렇기에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의 문을 열고 빛을 비추어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자은은 푸르고 햇볕은 따사롭다. 대지는 꽃밭이고 세계는 거대한 숙소와 같다. 우리 모두 이곳을 여행 할 기회는 단 한번 뿐이다.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장비도 동반자도 목적지도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즐거운 마음가짐이다. 그래야만 주변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가벼운 정신과 성실한 태도에서 시작된다. 거문고를 연주할 때 경쾌한 음을 내기 위해서는 현을 적당히 조여야 한다. 같은 맥락이다. 적당히 여유 있는 마음가짐을 가질 때 경쾌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성숙한 사람은 적극적으로 운명을 개척한다.
세상을 편히 바라볼 수 있는 심안! 그러면 어디를 봐도 청산녹수이며 나뭇가지에 앉은 새도 친구가 되고 수면에 떨어진 꽃잎이 모두 문장이 될 것이다.
더불어 이익에는 먼 조급증을 떨어내야 한다.
기다림을 즐길 줄 알아야 인생이 더욱 즐거워진다. 때론 2019년 가짜 중 조국이 몰고 온 광화문 촛불, 서초동 촛불처럼 참을 수 없을 만큼 지루한 기다림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기다림마저 노력하면 즐거운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
기다림은 신이 우리에게 허락해준 휴식시간 이라고 생각하자 이 휴식시간에 피곤한 심신을 쉬게 하는 것은 어떨까? 하여 기다리는 동안 오랜만에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잊고 지냈던 대지의 기운을 느껴보자 주변에 시선을 돌려 공놀이 하는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노인을 바라보자. 그렇게 기다림을 통해 자연을 만나고 생생한 삶을 느껴보자.
우리는 자연의 시간을 떠나 인간이 만든 시간 속에서 매일 바쁘게 살아간다. 그런 까닭에 자연의 거대한 순환과 이어짐 속에서 주고받는 메시지를 거의 대부분 놓쳐버리고 만다. 그 결과 왠지 알 수 없는 고독감에 언제나 시달린다.
그것은 거대한 생명의 순환과 이어짐에 참여하지 못해서 생긴 고독이다. 파스칼은 말한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조용한 공간에서 고요하게 휴식할 줄 모르는 데서 온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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