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동양평화 [각론]을 가슴으로 뿌리며
한문본 원문에 스며들어 시적인 상상력으로 휘감긴 

◀지난호에 이어서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 요인을 살펴보면, 우리 현실의 분단에서 오는 약체(弱體)로, [미ㆍ일ㆍ중] 3국은 한반도를 기미(羈?)하여 막대한 이득을 보고 있다. 상대방 코에 굴레를 씌우고 [재갈을 물리는 이 정책]은 한반도를 살아가는 주역들의 고삐를 비틀어 잡아맴으로써 동북아 질서를 주변국 중심으로 끌고 가려는 책략이 아닐까 생각된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제한 없는 침탈욕구]는 우리들이 이와 같은 재갈을 끊고 나오기에 쉽지만은 않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현재 실타래처럼 꼬인 동북아 정세는 세계패권주의와 맞물리면서 우리의 처지를 더욱 곤경에 처하게 하고 있다. 현 상태를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철저한 현실 인식과 각성이 뒤따라야만 한다는 점이 특히 강조된다. 한반도 피탈(被奪)의 역사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의 현재 21세기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모두다 이 때문이라는 명쾌한 정답을 우리들 가슴에 늘 지니고 있어야 할 숙제는 아닐지 모르겠다.

만약에 안중근이 살아계셨고, 나라의 큰 기둥으로 성장하는 힘만 부여했더라면, 애국하는 달변가(達辯家)로 <대한제국=일본제국=청나라>와 손을 잡고 세계 제일의 동양 삼국을 꾸미는 일은 결코 멀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디 그 뿐이던가. 안중근은 이미 110년 전에 유럽공동체와 같은 그 규모가 벌쭉한 국제적인 단체인 [우리~우리 같이 살자]라는 캣치프래이를 내걸고 세계가 놀랄만한 커다란 제안을 했다(EU). 이 제안 발표를 듣는 세계 이목은 냉소화(冷笑化)를 내뱉는 이들도 더러는 없지는 않았겠지만, 만약에 그렇게만 되었더라면 우리 황색인종이 먼저 힘을 내어 깨어난 공동체 정신을 부여잡고 공동화폐를 만들어서 한 등 짊어지고 <서울=동경=북경>을 하룻날 새벽에 일어나 여행할 날도 먼 상상만은 아니었으리라는 부푼 꿈의 세계지도까지도 은근하게 그려본다. 만약에 그렇게만 되었더라면, 어찌 우리에게 악마와도 같은 '저 철의 장막 휴전선'이 그어질 필요가 있었겠나. 온갖 상처투성인 이분된 장막의 그 여한들만이… 그럴수록 울안에 갇힌 안중근의 의지는 더욱 굳세어만 갔으리라.

안중근의 마지막 유언 한 마디가 남은 자들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신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뒤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回復)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그대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모두 각각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안중근이 부르짖으려고 했던 이 만세는 누구를 위하는 저리도 거친 함성이었을까?

2. [결구(結句)]를 통해 본 동양평화론의 시적인 지향세계
위 문답을 포함하는 제안 작품으로 불러 앉혀 명예로운 자리에 앉혔다. 아래 율시 한 편의 첫째 [기구]는 승구를 끓어 당겼고, 둘째 [승구]는 전구를 끓어내 화합했으며, 셋째 [전구]는 넷째 [결구]와 어울림 한 마당을 【결구】란 대문이 보다 잘 채워질 수 있도록 얹어 두었다. [결구]는 마무리를 잘 불러드린 조력제란 역할만은 참 손쉽겠다.

[결구(結句) 【Ⅰ】]의 시적인 지향 세계

東平結句類推辰   (동평결구유추신)
論旨全篇意味新   (논지전편의미신)
抗日斥洋千載鑑   (항일척양천재감)
安民輔國萬年眞   (안민보국만년진)
其謀共助倭人暢   (기모공조왜인창)
此案同參亞勢均   (차안동참아세균)
黃色一心防外侵   (황색일심방외침)
善隣友誼世情伸   (선린우의세정신)
=敍光,『東洋平和論【結句】』의 決心과 感想

동양평화론에서 결구(結句)를 자상히 유추했더니
안중근 의사 깊은 논지의 의미가 새롭기만 하네
항일에 서구세력의 물리침이 천년의 귀감이겠고
백성들 편리함은 나라 돕자는 뜻 만년의 진리네
의사의 도모에 공조하면 일본인도 창성할 것이고
의사의 제안에 동참하면 아세아 세력 균형잡겠네
황색인종이 일심단결하면 외침도 막아낼 수 있고
이웃나라끼리 사이좋게 우의를 다진 세정 펴겠네.

시인은 이 [결구(結句)]에서 주장하는 동양평화를 위한 논조야말로 참으로 옳았다고 높이 치켜세우면서도 아주 강인했을 것이란 전망이 앞선다. 이렇게 동양평화론 결구를 유추해보는 안중근의 깊은 논지의 의미가 새롭기만 하다는 주장을 강하게 펼쳤을 것이다. 그래서 항일(抗日)하는데 다음과 같은 굳은 서약을 했으리라. ‘서구세력의 물리침이 천년의 귀감이겠고 / 백성들 편리함은 나라 돕자는 뜻 만년의 진리네’라 하면서 침략자 일본과 서유럽을 함께 추긴다. 안중근은 이를 도모하는데 공조하면서 함께 창성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제안에 동참하면 아세아 세력이 바란스에 맞는 균형을 잡혀서 황색인종이 일심단결하면 외침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황색인종이 사이좋게 그렇게만 되었더라면 우의를 다지는 세정도 폈으리란 논객의 논리다.
화자는 이렇게 하여 의사의 도모에 공조하기만 했더라면 일본인도 창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에 안중근의 제안에 늦게라도 각성하여 동참하기만 했었더라면 아세아 세력에 참다운 균형이 튼튼하게 잡힐 수 있을 것이라는 결구의 끝맺음을 강하게 하고 있으니 새로운 구상이라는 논조가 보다 강인해 보이면서도 튼튼해 보인다. 문제는 일본이 영토에 대한 탐욕이다. 힘에 대한 균형의 문제는 서로 이해 속에서 자원과 기술의 문제다. [한~청~일] 황인종이 일심단결하며 외치기만 한다면 능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란 확실한 다짐을 한다. 우리는 이웃과 친하게 지내자고 했다. “이웃나라끼리 사이좋게 우의를 다지는 세정도 폈겠으니”라 했음이 어디 새삼스럽지는 않으리라.

[결구(結句) 【Ⅱ】]의 시적인 지향 세계

[내 차마 죽지 못하고 있다가, 이 좋은 소식 들으니]라고 읊으면서 36년간 암흑시대에 나라의 독립 운동에 참가했던 창강이 응칠 안중근에게 흠향하면서 바친 헌시(獻詩)다.

 平安壯士目雙張 (평안장사목쌍장) 
평안 출신 커다란 장사가 두 눈을 부릅뜨고
 快殺邦讐似殺羊 (쾌살방수사살양)
 나라를 쳐들고 온 원수를 개 잡듯 죽였구나
 未死得聞消息好 (미사득문소식호) 
내 차마 죽지 못하다가 이 좋은 소식 들으니
 狂歌亂舞菊花傍 (광가난무국화방) 
국화 옆에서 미친듯이 노래하며 춤 추었네.
 =시제 〈安重根〉 /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 1850~1927) 시인, 독립운동가』

김택영은 조선 말기 학자 겸 사회운동가다. 1908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출판활동을 하던 중 안 의사의 쾌거(快擧) 소식을 듣고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시인 창강(滄江)은 [나라를 쳐들고 온 원수를 개 잡듯 그렇게 죽였구나]라는 시상이 박력이 넘치면서도 대단히 급박함을 만난다. 화자는 10월 국화를 연상한다. [누렇게 핀 국화 옆에서 미친 듯이 노래하며 춤을 추었네]라는 시구는 물론 시상이 온통 두툼하기만 하다. 대시인다운 참기상이 넘치는 시적인 얼개를 만나면서 잠깐 [주해(註解)] 글로 올린 자리를 달리한다.

[결구(結句) 【Ⅲ】]의 시적인 지향 세계

「그대 이름 천추에 큰 빛을 내겠구려 / 천추에 이름 빛내겠구려」라고 했었으니 비록 이름은 전해지지 않은 무명씨가 안중근을 두고 [절명시] 한 편을 바치는 헌시(獻詩)다.

 人皆有一死  (인개유일사)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기 마련인데
 死難死於死  (사란사어사) 
죽어야할 때 죽기는 그렇게 어렵단데
 君獨死地死  (군독사지사) 
그대는 죽어야 할 자리에서 죽었으니
 千秋死不死  (천추사불사) 
그 이름만은 천추에 큰 빛을 내겠구려.
 =시제.『安重根』[絶命詩] : 마지막
운자를 [죽을 死]로 놓았음』

한시는 운자(韻字)라는 규칙이 있어 시적인 읽기에 내용의 어려움(難)을 쉬움(易으로 승화시키는 조화로움이란 양념을 더해준다. 이 시는 끝 글자가 측성인 [죽을 死]로 모두 같게 놓았다(死를 모두 여덟 번 놓았음). 이와 같은 제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천하의 명시(名詩)란 시상의 그늘 속에서 평가가 나온다. 가끔 이런 시를 두고 시인들은 “아”하며 놀란다. 대장부답게 죽어야할 때 죽을 자리에서 죽어 천추에 이름이 날렸다는 시적인 지향세계를 일궜다. 결구에서 [千秋死不死]라 했었으니 천년의 이름을 남겼다. 시인들 대체적인 성향으로 보아 대세의 큰 흐름을 꼬기작거려 빈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Ⅵ. 인간적인 고뇌 속에 응어리진 시심을 읊으며

지금까지 동양평화론을 가슴에 품고, 세계정세와 국방에 성숙하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통회어린 마음으로 살펴보았다. 평화론 분석의 대미(大尾)를 다듬는 정서로 보듬다보니 서정성이 부족하지만 성숙된 안중근의 시를 만나면서, 창(昌)이나 가요(歌謠)로 울부짖고 싶은 음감이란 충동감으로 시동을 걸어보았다. 섣부른 가사에다 미완성된 편곡을 붙이면서 안중근 작품에도 무딘 칼을 대어본다. 흥을 붙일 만하겠다는 의욕 하나만으로 문학성에다 음악성을 곁들이며 이 장을 뒤늦게 마련한다.

대미를 다듬어 마무리 짓기 전에 [피아(彼我)]의 작품을 몇 편 골라 분석해 본다. 음미코자 하는 [彼]는 안중근 작품을 바라보며 시적인 이미지를 이끌어가는 피상관자이고, 피상관자가 안중근 본인의 작품을 음미했겠으니 상관자인 [我]로 지칭해 본다.

欲保東洋 (욕보동양) 
동양3국이 평화를 보전하고자 한다면
先改政略 (선개정략) 
먼저는 그 정책을 고쳐야만 할 것이니
時過失機 (시과실기) 
시간이 많이 지나 좋은 기회 놓인다면
追悔何及 (추회하급) 
뒤늦게야 뉘우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안중근 『추회하급(追悔何及)』 전문

위 작품 『追悔何及』이란 시제로 놓고 살펴본다. 시제를 놓지 못한 점이 또한 특징이다. 4언 변격으로 시적인 격이란 징검다리를 건너가듯이 가볍게 맞춰가면서 시상을 따스하게 맞추어 간다. 일본이 우리의 평화를 보전하지 못하고 그 정책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래서 그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뒤늦게 뉘우친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짤막한 이 한 편의 작품을 곱씹어 가면서 읽어 보면 마치 금문(金文)과 같은 사자성어 한 줌을 더듬어 찾는 강열한 느낌을 받게 된다. 침략자 일본을 향해 동양평화를 위해 피아(彼我) 모두는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내 혼령, 이제는 땅에 떨어지겠지 // 자유시 안중근 / 총 10연 60행
안중근은 한문으로 성숙된 한시인이지 요즈음으로 말하는 자유시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내 혼령, 이제는 땅에 떨어지겠지】작품은 가슴으로 울어내는 서정성이 충만된 작품이다. 평자임으로 시제도 붙여보고 비유법이 곁들인 문학성도 찾아본다. 연속하여 이어진 작품을 [상중하] 편으로 나누고, 다시 중편은 [Ⅰ]과 [Ⅱ]로 나누면서 [서론부↔본론부↔결론부]로 나누는 등 [천지인(天地人) 삼재설]로 구분한다.

내 혼령, 이제는 땅에 떨어지겠지 / 상편(上篇) / 2연 13행
북녘기러기 소리에 잠을 깨니
홀로 달 밝은 누대 위에 있었다
언제고 고국을 생각지 않으랴
삼천리가 또 아름답다
형제의 백골이 그 삼천리 땅속에 의의하고
부조는 청산에 역력하다
우리 집에는 무궁화가 만발해서 기다리고 있고
압록강의 봄 강물은 돌아가는 배를 가게 해준다.

남자가 뜻을 육대주에 세웠으니
일이 만약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죽어도
조국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의 뼈를 어째서 선영에도 묻기를 바랄소냐
인간이 가는 곳에 이 청산인 것을.

2연 13행으로 이어지는 상편(上篇)의 시적인 시상은 고향에다 자기 뼈를 묻었으면 하는 염원의 꽃이 모락모락 피어오른 자유시 작품이다.
늦가을이 되면 북쪽에서 날아든 기러기 소리가 애처롭게 들린다. 언제나 고국을 생각하지 않을 리 있겠는가마는 그렇지만 삼천리 금수강상은 늘 새롭다는 한 마디의 푸념으로 다가선다. 삼천리 금수강산 아름답다는 시상에 따라 친인척을 묻혀있는 그 고향 땅에 그리운 것은 자신도 묻혀야 할 땅이 아니던가를 같이 붙잡고 떠올리게 된다. 산에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선산이 있으니 부조(父祖)는 청산에 있다는 시상은 차디찬 뤼순 감옥에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담았음이 훤히 보인다. 집안 울타리에는 무궁화가 만발해서 자신을 맞아하여 기다리고 있다면서 압록강의 봄 강물은 돌아가는 배를 가게 해준다는 첫구절의 시상이 마냥 든든해 보인다.
시인은 지난날의 굳은 다짐을 다시 반복해 본다. [남자가 한번 뜻을 육대주에 세웠으니, 거사의 일이 만약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죽어도 조국에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는 당찬 결심이 엊그제가 아님을 상기하게 된다.
한번 죄를 지었으니 다시는 선영(先塋)에 묻힐 수가 없다는 심사를 가만히 생각해 내는 시상 주머니가 충만해 보인다. 그 곳은 인간이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고장이라는 깊은 심회의 한 마디가 텅 빈 시상 주머니를 촉촉하게 적셔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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