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10일 제22대 총선이 한 달 남짓 바짝 다가왔다.

그동안 예비후보자들이 출판기념회나 다양한 경로를 통해 얼굴을 알리고 지지자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겸손한 모습을 지켜본다.

그 행간에 여론조사 그래프의 오르락과 공천에 얽힌 갈등, 잡초신당의 잡음 등 신경전도 후끈한 화제다.

이제 정당의 공천이 가닥 잡히고 선거운동이 가열되면서 어떤 방식이든 선거연설의 관문도 거쳐야 할 것이다. 물론 후보자마다 지역의 각종 집회나 행사장을 순회하며 유권자를 상대로 비공식적인 소규모 사랑방 선거연설의 공간은 열려있다.

그런데 정치연설에 있어서 유념해야 할 사항은 진부한 정책 설명이나 논문 발표가 아니다. 자기 정치의 필요ㆍ기대효과 등을 상세히 논할 자리는 따로 있다.

정치연설은 특정한 말하기 방식을 통해 자기의 매력을 발산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다.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바꾸어 전 과는 다른 심경을 갖게 하여 호감을 살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퍼포먼스의 본질이다.

요즘들어 갑자기 정치영화의 흥행이 화제가 되고 있는 현상은 선거를 염두에 두고 국민적 분노와 향수를 소환하여 정당의 선명성과 지향점을 호소하려는 광의의 퍼포먼스의 연장선이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지만 성공한 퍼포먼스의 한 장면이 이채롭다. 십 여년전 가수 나훈아는 각종 비도덕적 피소문에 시달렸다.

공연을 취소하고 돈을 돌려 주었단다. 기획사가 망했다더라. 남의 부인을 탐했다. 심지어 유명 여배우와 염문을 뿌리다가 일본 야쿠자에게 몸의 중요부위가 도려졌다는 끔찍한 소문까지 나돌았다.

참다못한 나훈아는 2008년 1월25일 서울 그랜드 힐든호텔 그랜드볼륨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백수의 왕 사자와도 같은 터프한 외모를 하고,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각종 소문은 아무 근거가 없다고 말한 뒤 사자후를 토했다.

“밑에가 잘렸다고 한다..... 지금부터 이 단상에 올라가서 바지를 벗고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하겠다. 여러분 중 대표는 말해 달라 아니면 믿겠습니까?”

특유의 경상도 억양으로 청중의 감성을 자극했다.

그러고는 실제로 탁자 위로 올라가서 혁대를 풀고 바지 지퍼를 약간 내렸다.

순간, 까악! 기자회견장에서 놀란 여성 청중들의 외마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야뉴스시간 TV화면에 잠시 떴다.

내가 기억하는 연설 중 가장 효과적인 명연설이었다.

이 충격적인 연설, 기발한 퍼포먼스를 통해 가수 나훈아를 둘러싸는 희귀한 피소문은 실로 잠잠해졌다.

허면 나훈아는 실제로 자신의 벗은 하반신을 보여 주었던가?

그래서 자기 아랫도리의 무사함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던가?

그렇지 않다. 그는 자기 바지의 지퍼를 내린채 탁자 위에 당당히 서서 포효 했을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 풍경이 바뀌어 졌고, 피소문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어떤 사안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이렇게 연극적 상황 연출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자 하는 점에서 연설은 제의적이고 주술적인 성격이 있다.

특히 정치연설의 자리에서 만큼은 그 정치인이 얼마나 유식한지 얼마나 이성적인지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연단에 오른 정치인이 복잡한 논증만 늘어 놓는다면 사람들은 훌쭉 줄기 시작할 것이다.

청중은 늘 이성이 아닌 공감으로 생각한다. 핵심은 그 직에 필요한 체력, 에너지,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감화력 있게 보여주면 일단 안심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농구대에 점프 슛을 하거나, 문을 박차고 나가거나, 연대위로 가볍게 뛰어 올라가는 행동을 보인데는 그만한 속셈이 있다.

국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연대에서 빨강 넥타이를 풀어 제치는 행동 역시 같은 맥락의 퍼포먼스 페러디다. 다만 연설 할 때 좌우로 두리번 거리는 고개의 균형추가 윤대통령과 겹치는 부분은 유산이 아니라 아이러니한 습벽의 고통이라 치자.

다음은 정치인이라면 적어도 질의응답에 명쾌한 매너를 보여 주어야 한다. 오히려 자신의 매력을 100% 발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청중이 질문을 던질 때 정답을 말 하려고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인지 시험해 보려고 던지는 미끼인 경우가 많다.

곤란한 질문의 추궁엔 깜찍한 유머를 섞거나 ‘그래요?’ 그쪽은 어떻게 됐나요?

영악할 정도로 상황의 계산에 능한 이재명식 도치법으로 질문을 재창조하는 능청도 기술이다.

관건은 정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반응을 유도하고 보여주는 순발력에 있다. 청중들이 자리에서 툭툭 털고 일어서면서 ‘아 저 사람이 깜이네!’하고 술렁거리면 일은 잘 된거다.

22대 총선에서는 젊은 정치 신인들이 국회에 대거 입성하기를 희망한다.

젊고 참신한 후보들이 좁디좁은 독점체제의 틈새를 비집고 나와 지역 패권주의와 봉건적 중앙 집권체제 하에서 독점 권력을 즐기고 있는 세력을 흔들어 놓아야 한다.

백가쟁명의 열린 시대로 가야 희망의 씨앗이라도 볼 수 있고 미래를 기대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더불어 유기농 정치의 토양을 조성하는데 국민들도 수준 높은 민도(民度)를 보여 주어야 한다. 사회 지식층의 앙가주망이 필요한 이유이다.

“정치가들은 기저귀와 같다”, “자주 갈아 주어야 한다.”

관찰과 위트의 매력적인 작가 마크트웨인이 비튼 풍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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