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정/한학자
김규정/한학자

◆康津萬德山白蓮社萬景樓勸化䟽
-취미 수초翠微守初(1590~1668)

泰華萬仞 勞寸趾而可登 淨土九蓮 修片善而能致 未有功伐 難得超昇 是以修仁得仁 種果得果 香城鏧骨果得菩提 雪山投身 花開覺樹 摩尼照掌 徑臨七寶之宮 淨業㝠心 直超三祗之劫 萬德山者 壺中別界 海上名區 世稱雲水之鄕 人道神仙之窟 景高出於鵬背 傍臨十洲 影半落於鰲頭 遙控八海 靈根入水 蟄虬龍於滄波 瑞峀凌虛 擢蓬壺於碧落 境連細柳依俙周侯之軍容 氣接耽羅 縹緲漢挐之山色 地誌載於福地 山經考於名山寺者 眞遠公之白蓮 正斷際之黃薜 國師眞靜 肇自創於羅朝 開士靜明復繼修於麗代 逮世祖光庙 運際昇平有慧照大師 功承賁飾 神休式賴 玅手攸營 由是三尊韻於三生 萬德傳於萬古 千眼示慈之化 白虎窺軒 三月談玅之風 靑龍降鉢 樓者 滕王高閣黃鶴仙居 淨侶登而探玄 騷人倚而選勝 赤髭玅偈 似聽雪竇之洪機 白氏佳吟 猶觀崔顥之題詠 檀楹桂棟 與月榭而交輝 翠桷朱甍 共星宮而接翼出現聽梵 津亭八月之龍 來舞隨齋華表千年之鶴 神祗守護 彌延佛祖之玅勳 造化多猜 遽被蠻夷之兵燹 給園煨燼 蕭條永明之舊基 棟宇煤炲慘惔大雲之遺迹 幾年崇極 一朝荆榛某上人水雲行裝 禪林坐寂 慨禪宮之銷歇 嗟覺路之埋塵 欲回開士 餘輝擬襲 國師徃轍 然事有難於累卵 志徒切於㭊空 諸信士捨火宅苦因 植金剛種智 富貴貽衆人之怨 䟽散黃金財貨害一身之刀 石投碧玉 善惡殃慶古聖實言 報應輪回 如來正誡 功有所就 目連指弟果於天堂 德有所歸桓因亨大福於忉利 弘濟路拓 大施門開 可縫可舂之資 隨力隨分而捨 則涸苦海爲福海 永享天宮 除業根而長善根 畢生佛國

출전 [翠微大師詩集]

◆강진 만덕산 백련사 만경루 권화소

태화산이 일만 길이라도 발걸음에 마음을 쏟으면 오를 만하고

정토 구품연대(극락세계)는 한 조각 선이라도 닦으면 이를 수가 있습니다.

공로가 있지 않으면 뛰어오르기가 어려우니 이 때문에 인을 닦아야만 인을 얻을 수 있고(修仁得仁) 과일의 씨를 뿌려야만 과일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향성(香城, 부처님의 나라)은 복사뼈에 구멍이 나도록 수행해야 보리의 열매를 얻을 수 있어 설산에서 몸을 던져 보리수(覺樹)의 꽃을 피웠던 것입니다.

마니주는 손바닥을 비추면서 그 빛은 칠보의 궁전까지 곧장 뻗치고 정업(淨業, 淸淨한 善業)은 마음을 집중하면 삼아승지겁(三阿僧祗劫, 보살이 佛位에 이르기까지 수행하는 기간)을 곧바로 뛰어넘습니다.

만덕산은 신선 세계의 별세계로 바닷가의 명승지라서 세상에서는 운수 향(雲水鄕, 구름 덮인 물가 고을)이라 부르고 사람들은 신선의 굴이라고 말합니다.

그 경치는 붕새의 등에서 높이 뛰어올라 십주를 널리 내려다보는 것 같고 그림자가 자라 머리에 반쯤 지면 팔해(八海, 사방四方 사우四隅의 바다)를 멀리서 제압하는 듯합니다.

신령한 뿌리가 물속에 들면 규룡은 넓은 바다 푸른 물결 속에 숨고 상서로운 산봉우리는 허공을 범하니 봉래산은 푸른 하늘에 솟아올랐습니다.

경계는 세류영(細柳營, 전라병마절도사영)에 이어져 주아부(周亞夫)의 군영 모습(軍容)처럼 아련하고 그 기운은 탐라도에 접하여 한라산의 산색은 가물가물하기만 합니다.

이리하여 지지(地誌)는 복지(福地) 항목(項目)에 실려 있고 산경(山經)은 명산 사찰(名山寺刹) 편에서 고찰할 수 있습니다.

사찰은 참으로 혜원 공(慧遠公)의 백련결사(白蓮結社)이고 바로 단제 선사(斷際禪師) 희운(希運)의 황벽사(黃薜寺)라고 할 것입니다.

진정국사(眞靜國師)가 신라시대 때 처음으로 창건하였고 고승(高僧, 開士) 정명(靜明)이 고려시대에 다시 이어 중수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 세조 광묘 조에 이르러 나라가 안정되고 평안한 운세를 만나 혜조대사(慧照大師)는 공업을 이어받아 아름답게 꾸미고서 진실로 신명께서 돌보아 주시는 덕택에 멋진 솜씨를 발휘하여 경영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삼존(三尊, 佛ㆍ法ㆍ僧)의 울림은 삼생(三生, 前生ㆍ現生ㆍ後生)에서 만덕(萬德)은 만고(萬古)에 전해지고 일천 개의 눈은 자비의 교화를 보여주며 백호가 난간에서 엿보니 구순 담묘(九旬談玅)의 풍토가 이루어져 청룡이 발우를 내려 주었습니다.

누각은 등왕각과 같은 높은 누각이고 황학루와 같은 신선의 거처로서 청정한 승려가 올라 현묘한 도리를 탐구하고 시인이 의지해 승경을 고르는 곳입니다.

부타발마(佛陀跋摩, 赤髭)의 묘한 게송은 설두 중현(雪竇重顯)의 넓은 기틀을 들려주는 듯하고 백씨(白氏, 고려 때 문장가인 白文寶와 白文節)의 아름다운 음영(吟詠)은 최호(崔顥, 당나라 시인)의 제영(題詠, 登黃鶴樓)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박달나무 기둥과 계수나무 마룻대는 월사(月榭, 달맞이 하는 다락)와 함께 서로를 비춰주고 푸른 서까래와 붉은 용마루는 직녀별(星宮)과 날개를 엇걸었습니다.

나루터 정자 팔월의 용은 범종 소리를 들으려고 출현했고 화표주의 천년 학은 기판소리(齋磬, 불공이나 예불을 드릴 때, 또는 끼니때에 미리 쇠판을 다섯 번 쳐서 소리를 낸다)를 듣고 찾아와서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나 천신 지기가 수호하여 부처와 조사의 묘한 공을 더욱 이어오던 중에 조물주의 시기함이 많아서인지 갑자기 오랑캐의 전화(戰禍)를 입고 말았습니다.

급고독원(給孤獨園)이 잿더미가 되면서 고요하고 쓸쓸하기가 영명전(永明殿)의 옛터 같았고 마룻대와 추녀 끝이 그을음에 젖어 대운사(大雲寺)의 유적처럼 참담하였습니다.

매우 창성하기가 몇 해던가. 하루아침에 가시덤불로 뒤덮이니 모 상인(某上人)이 운수 납자 행장으로 선림(禪林)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선궁이 사라진 것을 개탄하고 깨달음의 길이 진토에 매몰된 것을 탄식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고승(高僧) 정명이 남긴 빛을 헤아려 잇고 국사 진정의 옛날 발자취를 회복하려고 하였습니다마는 그 일은 계란을 포개어 올리는 것처럼 어려웠고 뜻만 석공관(析空觀, 색을 분석하여 공에 들어간다. 析色入空)처럼 절실하였습니다. 

여러 재가불자(信士)는 불타는 집(火宅, 三界가 탐욕 등의 번뇌로 어지러운 것을 불타는 집에 비유)이 괴로움의 원인(苦因)이 되는 것을 버리고 금강의 종지(種智, 一切種智. 현상계의 萬法을 다 아는 佛智의 하나)를 심기 바랍니다.

부귀는 많은 사람에게 원망을 남기니 황금을 크게 흩어버리고(䟽散) 재화는 한 몸을 해치는 칼날과 같으니 벽옥(碧玉)을 돌처럼 던지십시오. 선악 때문에 경사와 재앙이 따른다는 것은 옛 성현의 진실한 말씀이고 응보와 윤회는 여래의 바른 훈계입니다.

그 공이 성취되면 목련(目連, 摩訶目犍連)이 천당에서 여래(弟果, 除過)를 점지하는 것처럼 될 것이고 그 덕이 돌아가는 것은 환인(桓因)이 도리천(忉利天)에서 큰 복을 누리는 것처럼 될 것입니다. 

널리 구제하는 길을 개척하고 크게 베푸는 문을 활짝 열어 절구질할 만한 재물을 합쳐 힘과 분수에 따라 희사한다면 고해(苦海)가 말라 복해(福海)가 되면서 길이 천궁(天宮)의 즐거움을 누릴 것이고 악업의 뿌리가 제거되고 선업의 뿌리가 자라면서 마침내 부처님의 나라에서 태어날 것입니다.

注)

細柳依俙周侯之軍容 - 한 문제(漢文帝) 때 흉노가 크게 변방을 침입하자 주아부(周亞夫)로 하여금 세류(細柳)에 진을 치게 하였는데 순시하던 문제가 이 진영의 군율(軍律)이 엄한 것을 보고는 극찬하고 돌아왔던 고사가 있다. 《漢書 周亞夫傳》

遠公之白蓮 - 원공(遠公)은 혜원법사의 약칭이고 백련사(白蓮社)는 단체 이름으로 혜원법사(慧遠法師)가 도잠(陶潛), 육수정(陸修靜) 등을 초청하여 승속(僧俗)이 함께 염불 수행을 할 목적으로 백련사를 결성하고 서로 왕래하며 친밀하게 지냈다. 

三月談玅 - 九旬談玅. 수나라 지의智顗, 지자智者 대사로 칭해지는 그가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 90일 동안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묘妙 자를 해석하며 불가사의한 원융圓融의 논리를 천명했다는 구순담묘九旬談妙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赤髭 - 불타발마(佛陁跋摩), 각개(覺鎧), 서역 사람. 어려서부터 품행이 분명하고 곧았으며 총명함이 무리에서 뛰어났다. 이장(二藏)을 배우고 익혔으며 특히 『비바사론(毗婆沙論)』을 잘하였다. 항상 이 논(論)을 지녀 독송하면서 마음의 요체(心要)로 삼았다. 출전 〚개원석교록〛 4권.

◆寓轉物庵 전물암에 머무르며
-眞覺慧諶(1178~1234)

五峯山前古嵒窟 오봉산 앞 옛 바위굴中有一庵名轉物 그 안에 한 암자 있으니 이름이 전물암이라.我棲此庵作活計 날 구제할 계책에 이 암자에 깃들었으나只可呵呵難吐出 하하하고 크게 웃을 뿐 뱉어내기 어려워라.缺唇埦折脚鐺 턱 나간 사발과 다리 부러진 노구솥에煮粥煎茶聊遣日 죽도 끓이고 차도 달여 그런대로 살아가네.踈慵不掃復不芟 어설프고 게을러 쓸지도 않고 풀 뽑지도 않아庭艸如雲深沒膝 뜰에 풀은 구름처럼 짙어 무릎이 빠지네.晩起不知平旦寅 느지막이 일어나느라 새벽 寅時도 모르고早眠不待黃昏戌 일찍 잠이 들어 황혼의 戌時 기다리지도 않네.不洗面不剃頭 얼굴도 씻지 않고 머리도 깎지 않고不看經不持律 경도 보지 않고 계율도 지키지 않구나.不坐禪不燒香 좌선도 하지 않고 향도 사르지 않고不禮祖不禮佛 조사나 부처님께 예배도 하지 않는단다.人來恠問解何宗 사람들이 와서 괴이쩍어 무슨 종파냐 물으면一二三四五六七 일이삼사오륙칠이라고 대답할 뿐이라.莫莫莫密密密 그저 침묵하고 꼭꼭 숨겨야지家醜不得外揚 집안 허물은 밖에 드러내선 안 된다.摩訶般若波羅密 마하반야바라밀이라.

출전 [大東詠選]

■무의자 혜심無衣子慧諶(고려 명종8년1178~고려 고종21년1234)

속성은 최씨(崔氏). 이름은 최 식(崔寔). 자는 영을(永乙). 법명은 혜심(慧諶). 自號는 무의자(無衣子). 全羅道 羅州牧 和順縣 사람이다. 

신종4년(1201) 사마시에 응시하여 합격하고 개경 태학에서 글을 읽다가 어머니 병환이 나자 귀향하여 간병하다 작고하자 조계산에 들어가 지눌(知訥)의 제자가 되었다. 조계산 제2세 단속사 주지 수선사주(曹溪山第二世斷俗寺住持修禪社主)이다. 

강진 월남사를 창건했고 입적하자 고종은 슬퍼하며 진각국사(眞覺國師)의 시호를 내렸다. 이규보가 지은 진각국사비(眞覺國師碑)는 전라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사(月南寺)에 있다.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 등 다수의 저서가 전한다. 세수는 57세이고 승랍은 32년이다.

▲강진 만덕산 만경루
▲강진 만덕산 만경루

 

 

저작권자 © 장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