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정/한학자
 김규정/한학자

[지난 호에 이어]

역자 注)

위 행장을 지은 백암성총(栢庵性聰)은 취미(翠微)의 법제자이고 백곡 처능의 조카뻘 되는 제자이며 무용수연의 스승이다.

성은 이씨이고 남원 사람으로 인조 9년(1631)에 태어나서 숙종 26년(1700) 지리산 신흥사에서 입적했다. 

나이 13세에 조계산으로 출가하였으며 18세 때 방장산(지리산)에 들어가 취미대사를 만나 9년에 걸친 공부 끝에 그의 법을 이어받았다.

신안 임자도 해변에 폭풍으로 난파당한 빈 배 안에서 명나라 평림섭(平林葉) 거사(居士)가 교간(校刊)한 <화엄경소초華嚴經疏鈔>ㆍ<대명법수大明法數>ㆍ<회현기會玄記>ㆍ<대승기신론기大乘起信論記>ㆍ<사대사소록四大師所錄>ㆍ<정토제서淨土諸書>등 190권을 수습하여 숙종 7년(1681)부터 숙종 21년(1695)까지 15년간 나누어 5천 판을 발간하여 낙안 징광사와 하동 쌍계사 두 절집에 간직할 곳을 만들어 보관하고 천 등 불사를 크게 베풀어 낙성하였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우리가 배웠던 국사책에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禪燈은 浮休善修 → 碧巖覺性 → 翠微守初 → 栢庵性聰 → 無用秀演 → 影海若坦 → 楓巖世察 →  黙庵最訥로 이어졌다.

이 僧脈이 조선 불교를 중흥시켰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며 거의 대부분 저서가 남아 있다.

 

◆취미 수초대사 시문

-翠微守初(1590~1668)

▶贈脫頴師 탈영 대사에게 드리다.

頴師愛文字 탈영 대사는 문자 사랑해

欲作文字遊 문자 놀음하려 하네.

咀嚼烟霞味 안개 노을 맛 음미하며

諷詠山水秋 가을 산수 낮은 목소리로 읊어본다.

高義誠可尙 높은 뜻 진실로 가상하다마는

俗緣猶未休 속가 인연은 여전히 남아 있구나.

奈何自己上 어떡하다 자신에게 있는 보물은

悠悠不回頭 황당무계하게 고개도 돌리지 않는가.

所趍非一途 가야할 방향은 한 길이 아니지만

亦各修其修 그래도 각자 닦을 것은 닦아야 한다오.

靜境絶瀟灑 더없이 맑고 깨끗해 고요한 경계

石窟頗淸幽 자못 수려하고 그윽한 석굴이라.

一念大千界 한 생각 속에 삼천대천세계가 들었나니

奇觀非外求 기이한 풍경은 밖에서 찾지 않는다오.

▶倦行吟 길을 가다 지쳐 읊다.

疲極憇沙堤 너무 피곤해 모래 둑에 쉬자

夕陽下遠岑 석양은 먼 산봉우리 함락시킨다.

西風吹落葉 가을바람에 나뭇잎 지고

颯颯凉人心 세찬 바람은 사람 마음 서늘하게 한다.

橋頭踈雨過 다리 가에 성근 비 지나고

石逕秋苔深 돌길에는 가을 이끼 잔뜩 깔렸다.

閑雲返舊峀 한가한 구름은 옛 산굴로 되돌아오고

夕鳥歸幽林 저물녘 산새는 고요한 숲으로 돌아간다.

愁憂集枯膓 마른 창자에는 근심 걱정만 쌓여

海天賓鴻音 바닷가 하늘 기러기 소식 물리친다.

寒虫鳴不已 쓸쓸한 벌레들 울음소리 그치지 않고

曠野生微陰 빈 들녘에는 옅은 그늘 일어난다.

誰憐倦行客 누가 지친 나그네 가련해 할까

自然多苦吟 자연스레 고음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

注)

苦吟 - 고심하여 詩歌를 지음. 또는 시가를 짓느라고 고심함.

▶秋日送僧 가을날 납승을 전송하며

樵歌數曲夕陽殘 초동노래 몇 곡에 석양은 저물고

葉落湖邊野色寒 호숫가에 나뭇잎 떨어지자 들 빛은 차갑다.

遙望一僧飛錫處 멀리서 중 홀로 떠나는 걸 바라보자니

暮雲將雨裹秋山 비 머금은 저물녘 구름은 가을 산을 에워싼다.

▶別李水使 이 수군절도사와 작별하며

未有將軍令 장군의 령이 있지 않아도

先須野衲行 시골 중은 먼저 떠나야 할 몸이라.

依俙曾面目 아득한 옛날부터 알던 얼굴처럼

談笑此逢迎 담소하며 남의 뜻을 맞추어 주셨다.

海接耽羅國 바다는 탐라국과 인접하고

城因細柳營 성은 전라병마절도 영과 인연한다.

況當南極遠 더구나 머나먼 남쪽 끝이라

愁殺更離情 시름에 이별의 감정 다시 몰려온다.

▶敬次東嶽李先生贈送韻二

동악 이 선생 안눌이 전송하며 준 시에 삼가 차운하다. 2수

野老生來未有名 시골 늙은이로 태어나서 이름이 없었으나

只因夫子贈言行 선생과 인연으로 언행이 알려졌다오.

雪齊乞句曾蒙惠 월담설제가 시구 청한 은혜 일찍 입었고

禪社論玄已許情 선사에서 현묘한 기틀 논하며 정 허락했다.

回首故山時景短 고향에 머리 돌리자 계절 풍경은 짧고

斷膓衰草夕陽明 철 지난 풀에 애끓어도 석양은 밝기만하다.

不知何處若相憶 어느 곳에서 서로 생각날지 모르지만

秋晩三神月五更 늦가을 삼신산에 뜬 달은 오경을 가리킬 거야.

注)

雪齊 - 편양문파 월담 설제(月潭雪齊, 1632~1704)이다. 

선등은 서산 휴정 → 편양 언기 → 풍담 의심 → 월담 설제 → 환성 지안 → 호암 체정 → 연담 유일ㆍ설파 상언 으로 전승되었다. 

그 두 번째 시 其二

連床未久手重分 함께 지내다 오래지 않아 다시 헤어지니

物外輕裝出峀雲 가벼운 차림에 산골구름타고 신선세계 나간다.

初到北禪曾學道 처음에는 북방의 선으로 일찍 도를 배우고

晩投東嶽細論文 늦게 동악시단에 투신해 자세한 문장 논했다.

自知行業渾無取 행업은 전부 취할 것 없음을 스스로 알아

還愧名稱已普聞 이름 널리 알려지고 칭송되니 되레 부끄럽다. 

鉼錫竟將歸古隱 마침내 물병과 지팡이로 옛 은거지 돌아가

鳳林眞境枕湖濆 봉림사 선경 호수물가를 이부자리 삼으리라.

注)

北禪 - 중국 신수(神秀, 606~706)의 북종선北宗禪이 아니라 우리나라 북방 지역의 선종이란 의미로 쓰였다. 부용 영관의 법제자 가운데 청허 휴정(1520~1604)은 묘향산을 중심으로 북쪽 지역에서 주로 교화를 펼쳤고, 부휴 선수(浮休善修, 1543~1615)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남쪽 지방에서 활동하였다. 

東嶽 - 東嶽詩壇. 조선 중기에 당대의 명사들이 모여 시를 짓고 풍악을 즐기던 詩會로 주축인 이안눌(1571~1637)의 호를 따서 시회의 이름을 지었다.

附原韻 원운을 붙이다.

希安會說守初名 희안이 수초의 이름을 마침 말씀해 주어

方丈今從覺性行 지금 각성을 따라 방장산으로 간다네.

如爾詩僧那易得 그대 같은 시승을 어찌 쉽게 얻으랴

使余秋日不勝情 가을날 나의 정회 견딜 수 없게 하는구나.

三神洞僻霜楓晩 삼신동 후미진 곳에 철 늦은 단풍 물드니

七佛庵深霽月明 칠불암 깊은 곳에 비 개인 후의 달은 밝아라.

徽老見時應問訊 충휘 장로 만나면 응당 안부 물을 것이니

暮年憂患飽新更 늘그막에 우환만 실컷 겪는다고 전해 주게나.

其二

暫時相見遽相分 잠시 만났다 갑자기 헤어지니

萬里長空一片雲 일만 리 높고 먼 하늘에 한 조각구름 떠간다.

黃髮病翁偏好道 누런빛 머리털 병든 노인 도만은 좋아하고

赤髭禪子最能文 붉은 수염 선자는 문장에 가장 능하다.

徽公秀句人皆誦 충휘 공 뛰어난 시구는 모든 사람 애송하고

性老高名世共聞 각성 장로 높은 명성은 세상 모두가 안다오.

行到石門煩寄語 지리산 쌍계사에 이르거든 말씀 좀 전해주게

秋風回首海西濆 가을바람 부는 해서 물가에 머리 돌린다고.

注)

赤髭 -적자비바사(赤髭毘婆娑). 불타야사(佛駄耶舍)로 붉은 수염을 지녔고 비바사(毘婆沙, 注釋書)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적자비바사(赤髭毘婆沙)”라고 불렀고 구마라집바의 스승이었으므로 대비바사사(大毘婆沙師)라고도 칭송했다. 

요진 홍시 5년(403)부터 번역하기 시작하여 15년(413)에 이르기까지 <장아함경長阿含經>22권ㆍ<허공장보살신주경虛空藏菩薩神呪經>1권ㆍ<사분계본四分戒本>1권ㆍ<사분율四分律>45권 등 4부 69권을 번역했다.

출전 <古今譯經圖紀> 3권

▲방장산 천은사 보제루
▲방장산 천은사 보제루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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