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2007-04-19 16:07]

더 좋은 자리 찾지 마시게.
자네가 앉은 이 자리가 꽃자리라네…

▶723m 천관산 정상에서 누군가 속삭이는 듯.



◇ 백산찾사들이 천관산의 정상인 연대봉에 있는 봉수대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남정석 기자>


자연은 사람과 지척에 있는 것이 좋을까, 아님 그 반대일까.

 한반도의 최남단이라는 땅끝 마을과 나란히 붙어 있고, 서울 광화문을 기점으로 정남쪽에 있어 정남진이라 불리는 전남 장흥은 이 땅의 절반 인구가 살고 있는 수도권에서 찾아 가기엔 부담이 될만큼 먼 곳이다. 정상 부근 능선에 숲을 이룬 듯 바위가 솟아 있어 하늘의 면류관을 썼다는 뜻으로 이름 붙여진 장흥의 천관산(天冠山)의 자태가 유난히 기억에 남고, 짧은 산행의 여운이 길게 남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1시간 정도 오르자 다도해가 손에 잡힐듯 유혹
억새평원-용이 노닐던 구룡대 등 감탄이 절로~


육지에서 가장 빨리 봄이 찾아온다는 장흥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눈부시게 푸른 보리밭이 지천이다.

 피어서 한번, 져서 한번 아름답다는 동백꽃이 그 모습을 감추기 전 마지막 아름다움을 뽐내며 산행 초입부터 백산찾사를 반긴다. 머리를 들어 능선 쪽을 살피니 불쑥불쑥 바위가 솟아 있는 모습이 분명 다른 산과는 차이가 있다. 지난달 봄의 첫머리에 찾았던 문경에서 호된 꽃샘추위를 맛봤지만 이번달 산행은 훈풍이 완연하다. 영월정을 지나 정상인 연대봉으로 나서니 곳곳에 핀 진달래와 노랑제비꽃이 봄이 한껏 무르익었음을 알린다. 오르막길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산의 높이(723m)가 아담해서 그다지 힘이 들지는 않는다.

 1시간여도 오르지 않자 좌측으로 남해 다도해가 훤히 트인다. 거금도와 금당도, 금일도 등이 가까이 보이고 완도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제주 한라산까지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하늘이 희뿌옇다.

 다른 산의 능선에서는 빽빽한 잡목들로 인해 앞서거나 뒤따르는 일행의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다. 그런데 천관산에는 해송과 동백나무숲 등을 제외하곤 억새가 주를 이루고 있어서 시야가 툭 트인다.

 남근을 닮은 양근석을 지나 봉수대처럼 만들어진 연대봉까지 오른 시간은 채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기부터 환희대까지는 억새 평원으로 유명하다. 가을에 억새 축제가 펼쳐질 때 다시 오고픈 마음이 절로 든다.

 관음보살이 불경을 돌배에 싣고 이 곳에 와서 쉬면서 그 돛배를 놓아둔 것이라 하는 진죽봉을 지나자 천관산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구룡봉이 나타났다. 아홉마리 용이 머리를 맞대고 노닐던 형상에다 발자국이 여러군데 찍혀 있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산 밑에서 올라왔는지, 아님 조상 대대로 여기서 살아왔는지 잘 모를 무당개구리가 발자국처럼 움푹 패인 물 웅덩이에서 노닐고 있다. 이 개구리도 사람이 찾지 않는 시간에 물 밖으로 나와 다도해를 감상하지는 않을까하는 황당한 상상도 해 본다.

 탑산사로 내려오는 내리막길에는 더 많은 수의 동백꽃이 백산찾사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가운데 산행 말미의 문학공원에 서 있는 시비(詩碑)에서 시인구상님의 '꽃자리'라는 시가 유난히 가슴에 박힌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자연과 사람, 너무 멀어서도 너무 가까워서도 안되는 것 같다. < 천관산(장흥)=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MTB타고 '1만8000km 유라시아 대륙 횡단' 남영호씨도 참가

○…천관산 산행에 초청된 남영호씨(30ㆍ사진)는 지난해 5월 중국 텐진을 출발, MTB를 타고 230여일동안 유럽의 최서단인 포르투갈 로카곶까지 이르는 1만8000㎞의 유라시아 대륙 횡단을 마치고 돌아왔다. 사실 남씨는 지난해 탐험을 떠나기 전 산악잡지인 마운틴에서 '한국 100대 명산 찾기'의 사진 취재를 담당하기도 했다. 사진기자에서 강사로 '신분상승'을 해 금의환향한 남씨는 "남에게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대학시절 꼭 실크로드를 따라 대륙 횡단을 해보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길을 떠난 것 뿐인데 마치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강사로 초청해줘 부끄럽다"고 밝혔다.


▶천관산은?

전남 장흥군에 위치한 해발 723m의 산으로, 가끔 흰연기 같은 이상한 기운이 서린다하여 신산(神山)이라고도 했다. 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으로 꼽히며 기암괴석이 빼어나고 억새가 일품이며 다도해의 그림같은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매년 10월에는 전국 규모의 억새제가 열리고 있다.

천관산 산행 참가 독자

김삼환 한상준 신경철 민병한 박승만 임학순 임건식 이옥승 김명의 김일웅 엄정옥 김군혜 장광자 김태명 강춘원 안재영(이상 서울) 이창희(안양) 노미선(구리) 김종생(군포) 이석휘(남양주) 이형구(고양) 이법주(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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