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댐 상류에 대규모 납골당 조성이 추진되면서 주민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납골당 조성업자는 광주소재 케이원쇼핑 회사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유치면 운월리 일원 20만평의 부지에 납골시설과 수목장 시설 등을 설치하겠다는 민원을 지난 4월 장흥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또 이를 접수한 장흥군은 관계 부서와 유관기관의 협의를 거쳐 설치가부를 60일 이내에 결정하도록 돼 있어 오는 6월 14일까지 갑부 회신을 업자측에 해주어야 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치 주민들과 관내 사회단체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이에 따라 장흥군은 이에 대한 법률적 검토에 들어갔지만, 법규정에 저촉되지 않은 사업 추진이어서 골머리를 앓
어린이들이 투호놀이.워따메, 뉘집 딸이당가, 귀엽기도 하네이..한재공원의 할미꽃이 탐진강변으로 원정나들이를 했나요? - 할미꽃을 분배해주는 생약초회원들.양기수씨의 소원 써주기 달필이 빛을 발하고.- 김평환선생이 놀라워하는 시선을 감추지 못하고.우리 아들들의 올해 소원은 뭘까?- 민속놀이 경연에서 수상자는 선물을 듬뿍받아 즐겁고.신명모듬패의 풍물이 흥을 더욱 돋구는구나!
유관순 이전의 여성 항일운동가 이소사는 누구인가◆…1999년에 이배용씨가 펴낸 (청년사 간)라는 책이 있다, 여기서 저자 이씨는 ‘한국의 잔다르크’라는 제목으로 장흥 여성 동학교도 이소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중략 …현존자료에서 유일하게 알려진 여자동학군으로 이소사(李召史-소사란 당시 일반 평민 중 결혼한 부인을 지칭하는 용어이다)란 여성뿐이었다. 이소사는 18945년 3월 동학군이 장흥부를 공략할 때 22세의 젊은 여인으로 두령이 되어 선두에서 동학농민군을 총지휘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이소사는 일찍이 꿈에, 天神으로부터고정(古鋌)을 받은 여자도인으로 동학교도들 사이에서는 신성한 여인으로 숭앙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신녀인 이소사조
소설 ‘원효’를 쓰면서 역사의 행간 굽이굽이에서 여러 가지 슬프고 무섭고 흉측한 거래들을 읽었다. 가야를 신라에게 통째로 바친 왕손의 후예인 김유신은 신라 정치의 한복판에 서기 위해, 신라 왕손의 후예인 김춘추에게 누이 문희와 보희 둘을 모두 시집보낸다. 김춘추는 임금의 자리에 오르기 위하여 김유신의 환갑 선물로 문희와 자기 사이에 낳은 딸 지소를 시집보낸다. 삼중의 정략결혼이다.김춘추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기 위해 당태종과 밀거래를 했다. 당나라 연호에 복식을 쓰고,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다음에는 청천강 이북의 넓은 고구려 영토를 당나라에 주고, 그 아래쪽 땅을 신라가 차지하겠다고 했다. 밀거래에 응하는 당나라의 내면에는 장차 신라까지를 삼킬 음모가 들어있었다. 때문에, 신라는 백제와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의 빗나간 사업들이 나를 소름끼치게 한다. 그 가운데 제일 슬프게 하는 것이 난자를 이용한 빗나간 사업이다. 이 나라를 세계의 가장 큰 부자 나라로 만드는 미래 의학사업의 하나로 줄기세포연구가 떠올라 온누리를 떠들썩하게 하더니, 그것을 주도한 사람들이 법정에 섰다. 그보다 훨씬 전부터 몇몇 불임 전문 병원들에서는 가난한 여성들에게서 채취한 난자 장사를 통해 짭짤하게 재미를 보아왔고, 지금도 그 장사는 성업 중일 터이다.150만원쯤에 사들인 난자를 이 나라 혹은 일본에서 온 불임 여성에게 몇백만원,1000만∼2000만원,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고 판다는 것이다.처음 생명공학에 쓸 난자 채취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린 시절 암탉이 둥지에 낳은 따끈한 알 꺼내오던 일을 떠올렸고
ㄹ형,내 토굴 앞 바다에서 캔 바지락을 조금 보내드립니다. 부담스러워하지 마시고 맛있게 삶아 국을 내어 드십시오. 아마, 다른 어떤 바다에서 난 것보다 더 향기롭고 고소할 것입니다. 저의 토굴로 찾아온 사람들이 말합니다.“선생님에게는 세월이 거꾸로 흐르는 듯싶습니다. 얼굴이 날이 갈수록 희어지고 눈이 맑아지십니다.”물론, 저를 기분좋게 하려는 덕담일 터이지만, 그러할지라도, 서울에서 이리로 이사온 이후, 비쩍 말라 있던 제 체중은 63㎏으로 늘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아마 제가 살고 있는 장흥 안양 율산마을 앞의 오염되지 않은 여닫이 바다에서 나는 석화 무침과 바지락과 붕장어 곰국으로 끓인 시래깃국을 상식하고, 가끔 이 바다에서 잡히는 생선회를 먹고 앞산에서 딴 차를 마시고 마음
이여름, 토굴 뒤란 언덕 위의 죽로차 밭 관리하기는 내 운명 길 바꾸어가기나 다름없다. 죽로차 밭 가꾸기는 여느 차밭 가꾸기보다 더 힘들다. 어린 차나무들 주위에 솜대나무의 죽순들이 아우성치며 밀고 올라오기 때문이다. 굵은 죽순들만을 건성드뭇하게 남겨 두고 다른 것들을 쳐내주는 작업을 끈질기게 하지 않으면 이 해 안에 다시 빽빽한 솜대 밭이 되어 버리고 말 터이다. 차나무는 반음지 반양지를 좋아한다. 솜대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버리면 차나무들이 호리호리해진 채 제구실을 못하기 마련이다. 초여름부터 가을까지는, 아침 식전이나 해저물녘에 부지런히 차밭의 잡초들을 베어주어야 한다. 아내는 차나무 주위의 풀들을 낫으로 쳐내고 나는 풀 베는 기계로 그 근처의 창처럼 솟아오르는 죽순들과 육손이덩굴과 쑥대와 씀바
‘눈앞을 가리는 꽃나무 잘라 없애니 석양 하늘 아래 아름다운 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초의 스님께서 대흥사 일지암에서 도 닦으실 때 쓰신 시의 한 대목이다. 지관(止觀)을 함축하고 있는 선시(禪詩)이다. 요즘 차를 마시면서 지관에 대하여 공부를 하고 있다.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만행하는 선재소년이 선지자 문수보살을 찾아갔다. 둘은 들판 길이 끝나는 곳에 우뚝 솟아 있는 산기슭 밑에서 만났다. 세상에서 가장 참다운 지혜를 터득하고 싶다는 소년의 까만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있던 선지자는 소년에게 숙제 한 가지를 내주었다.“너의 어둠(迷妄)을 걷어내고 참 지혜를 터득하게 하는 약초가 이 산 속에 있다. 그것을 뜯어가지고 오너라.”소년은 그 약초를 구하기 위해 이 산 저 산을 헤매어 다녔다. 대관절 어떠
늘 자궁의 권력을 두려워하고 조심하면서 살아왔다. 우주를 낳은 자궁의 가장 확실한 가시적인 모습은 바닷물이다. 나는 물 무섬증이 있다. 이 세상 지순지고의 윤리는 물 같은 것이다. 젊은 시절 대단한 자궁 권력자였던 퇴기 춘향 어머니는 춘향의 자궁 속에 이몽룡을 빠지게 하는데 성공했다. 이몽룡이 어사출또한 다음 사형선고 받은 춘향을 옥에서 끌어냈다는 말을 듣고 동원으로 달려가며 춘향 어머니가 외쳐대는 말,“너 이놈들, 내 배(자궁) 다치지 마라. 열녀 춘향이 난 배다, 이놈들!” 이보다 더 호쾌한 자궁 권력 과시의 말이 어디에 있는가. 연산군 어머니 윤씨의 자궁은 죽은 다음에도 세상을 피로 물들이는 권력을 과시했다.나를 낳고 키워 가르치고 한 여인을 짝지어주신 어머니의 자궁 권력은 나로 하여금 많
지하철 노약자석에 두 사람의 노숙자가 타고 있었다.50대인 그들은 똑같이 한 자동차 회사의 허름한 하늘색 제복 윗도리를 걸치고 있었고, 한 성당에서 주는 점심을 얻어먹으러 가고 있었다. 불콰하게 취해 있었다.체구 크고 뻐드렁니 난 쪽이 말했다.“유치한 자식들, 차라리 동원 회사 배 납치한 놈들같이 해적질을 하지!”체구 작달막한 쪽이 빈정거렸다.“아이고 형님, 우리민족은 신라 때부터 해적들에게 시달려 오기만 했어요. 우리민족이 바다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한지 아시오? 이 반도 땅 해변 해수욕장들은, 물 길 바람 길 파도 길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방파제나 부두를 설치하고, 아파트 지으려고 바닷모래 준설한 까닭으로 자갈들만 엉성해져가고 있어요. 썩은 시화호를 만들어놓고, 다시 썩은 냄새 풀풀 나는 새만금
한반도의 끝자락 남포 정남진, 회진, 신리바닷가 오마이뉴스/글. 사진 조찬현기자 ▲아름다운 포구 남포남포는 한반도의 남녘 끝자락이다. 정남진이다. 서울의 광화문에서 내려오면 정남쪽에 위치한 해변이며 북쪽의 중강진과 일직선상에 있다. 그 좌표점은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에 표시되어 있다. 남포마을은 경관이 빼어나다. 장흥군 용산면 남포마을은 400여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소등섬 할머니의 당제와 전설이 깃들어 있다. 또 영화 의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깨끗한 바다 득량만에서 채취한 석화구이를 맛볼 수 있으며 해안선이 참으로 아름답다. 해돋이의 황홀경은 물론 달맞이까지 할 수 있는 관광명소다.먹거리와 볼거
마르케스의 소설 ‘백 년 동안의 고독’에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자식에게 돼지꼬리가 달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을 읽으면서 나는 신의 저주로 말미암은 퇴화를 생각했다. 우리에게는 상피(相避)라는 말이 있다.‘가까운 친척 남녀 사이에 저지른 성적 교접’을 뜻한다. 원래는 ‘서로 성관계를 피하는 사이’를 뜻한 말이었다. 그것은 부모 자식 사이, 오누이의 사이, 삼촌과 조카의 사이, 사촌이나 5촌 사이처럼 서로 당연히 성관계를 피해야 하는 사이를 말하는 것이다.어느 마을에서 오누이의 사이에, 혹은 삼촌과 조카의 사이, 사촌이나 오촌 사이에 간음 사건이 일어나면 ‘그 집안에 피 붙었다네.’ 혹은 ‘상피가 났다네.’하고 말하곤 했다.어떤 통계를 보니, 여성 남성 모두 철들기 이전에 상피 관계에 있는 사
도깨비 생각 때문에 깊이 잠들지 못한다. 새만금 바다 사건(나는 그것을 ‘사업’이라고 말하지 않고, 바다에 대하여 무지한 우중이 일으킨 ‘사건’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도깨비적인 데가 있다. 유년 시절, 할아버지에게서 도깨비 이야기를 들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꼭두새벽에 고기잡이 하러 나가는데 키 장대 같은 도깨비가 씨름을 하자고 덤비어, 도깨비는 왼쪽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놈의 왼 다리를 걸어 넘어뜨려 가지고 사장나무 밑동에다가 친친 동여 묶어놓고 낮에 가보았더니 닳아진 몽당 빗자루였다는 이야기, 어느날 밤에 천관산 모퉁이 한 굽이를 떼어다가 바다 한가운데에다 동글동글한 섬 다섯 개를 만들어 놓더니 며칠 뒷날 밤에 두 개만 남겨 놓고 셋을 들어다가 다시 천관산 ‘도둑마끔’
나의 92세 노모께서 강건한 ‘늙은이’이므로 그분의 아들은 예의상 싱싱한 ‘풋 늙은이’여야 한다. 나이 들면서 일과 꽃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집착이고 탐욕인지도 모른다. 꽃을 보면 허기진 듯 코를 대고 향을 맡곤 한다. 색을 밝히는 남자들은 사랑해야 할 여인이 없으면 꽃이라도 희롱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꽃을 탐하는 것은 무어라 흉허물해야 하는가. 나는 그것을 꽃들의 사업 사랑하기라고 말한다. 꽃 한 송이 피는 것을 보고 우주의 변환을 헤아린다.꽃들이 하는 사업처럼 화사하고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우주 율동의 원리에 따라 천하 인민들에게 베푸는 것을 사업이라 한다.’고 주역은 말한다.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살이를 한 다산 정약용 선생은 실사구시적인 글쓰기가 사업이었
하늘에는 반투명의 비닐 종이 같은 구름이 끼어 있다. 마음이 어두워 뒤란 언덕 위의 차나무 밭으로 올라갔다. 밭 여기저기가 움푹움푹 패어 있다. 멧돼지의 소행임에 틀림없다.지난 늦은 가을 이웃 밭에 출현하여 고구마를 뒤져 먹은 멧돼지 가족들이 이 겨울에 궁해지자 우리 차밭을 뒤지고 판 것이다. 달콤한 솜대뿌리 풀뿌리를 뒤져먹었다. 일꾼 여남은 명이 호미나 괭이로 잡초 뿌리를 말끔하게 제거해 놓은 것처럼 차나무 사이사이를 뒤지고 파놓았다. 어린 차나무 한두 그루씩이 뽑혀 있기는 하지만, 한 군데에 옹송그리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건재하다. 뿌리가 직립인 데다 씁쓸하기 때문에 파먹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놈들이 다시 와서 더 깊이 파 뒤지게 되면 차나무들이 고사하지 않을까. 이놈들이 출입하지 못하
자연과 벗삼은 ‘문화의 산물’ 김석중/소설가 그 강의 흐름은 적요하고 소박합니다. 50㎞정도의 유역이라면 그다지 큰 강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요. 그럼에도 대지의 젖줄임은 확연합니다. 소소한 서정의 형용들은 바로 이 땅의 얼굴이며 마음이기도 합니다. 인류의 문명이 강을 모태로 해서 형성되었듯이 이 강물 또한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의 원천입니다. 사람들의 삶이 만들어 내는 문명과 문화의 편린들이 함께 하고 있고, 그것들은 세상속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정자(亭子) 또한 선인들이 창조하던 다양한 문화의 산물입니다. 그 강에는 끝없는 이야기들을 담은 정자들이 전설과 학문과 예술과 역사의 이야기를 담고있습니다.부춘정(富春亭)은 그 정자(亭子)중의 소슬한
탐진강과 정자문화 이대흠/시인아름다운 물빛이 있는 강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정자이다. 탐진강이 온 들을 적시는 장흥도 예외는 아니어서 10여 개의 정자들이 요소 요소에 자리하고 있다. 장동 두룡의 용암정, 장항 호계의 용호정, 지와몰 용반리의 용호정, 부춘정 경호정 독취정 등 이름을 다 열거하기에도 벅찰 정도이다. 가만히 장흥의 정자들을 생각해 본다. 어느 정자가 산꼭대기를 넘보던가. 장흥의 모든 정자는 산(자연)에게 미안하다는 듯이 앉아있다. '지가 여그 조깐 자리하고 앙거도 되겄습니까?'라고 묻는 듯 하다. 탐진강변의 정자들은, 탐진강변의 정자라고 해도 좋고 장흥의 정자라고 해도 좋다. 이상하게도 탐진강변의 모든 정자는 장흥 땅에 있기 때문에 두 표현이
문화의 수도 장흥을 꿈꾸며이대흠/시인 1. 남도 0번지 장흥 남도를 가로 세로로 나누면 그 중심에 장흥이 있다. 가로로 선을 긋고 +와 -사이의 중심에 다시 세로로 선을 긋고 만나는 지점을 보면, 그곳이 장흥이다. 이른바 제로의 그 점이다. 그런데 그 0의 지점이라는 말은 단순하게 지리적인 우연성만 나타내지는 않는다. 남도를 가로와 세로로 나눌 때, 그 가로축은 물질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세로축은 문화와 관련이 있다. 가로축의 극점이랄 수 있는 목포와 광양은 항구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목포가 부흥을 누렸다면, 그 이후는 광양이 새로운 부흥지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세로축의 극점이랄 수 있는 다도해의 여러 섬들과 광주 담양은 관
구름 이현동http://blog.naver.com/gooluma부춘정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고창현감을 지냈던 문희개 선생(1550-1610)이 향리에 돌아와 선조 31년(1598)에 건립한 것이다. 처음에는 청영정(淸潁亭)이라고 하였다. 부춘정이 있는 이 마을은 남평 문씨들이 살고 있었는데 청풍 김씨들이 들어오면서 남평 문씨들은 모두 옮겨가, 이 부춘정 또한 처음에는 남평 문씨 소유였으나 나중엔 청풍 김씨 소유가 되었다. 부춘정 앞은 탐진강이 흘러가는데 지금은 수량도 적어 별 볼게 없지만 그래도 그 옛날 부춘정 앞은 맑은 강물이 흘러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 또한 정자에 걸린 현판처럼 ‘제일강산’일터... 부춘정에는 정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정자의 서쪽 산으로는 소나무,
비 내리는 날 조용한 부춘정에 들어 빗속에 부춘정을 찾았다. 비는 그치다 말다, 를 반복하고, 그새 이삭이 팬 벼논에는 부지런한 농부가 '똘(논안에 배수가 잘 되도록 만드는 도랑)'을 치기 위해 바쁘다. 불어난 강물로 인해 부춘정이 있는 부춘 마을은 바다 가운데의 섬인 것만 같다. 대개의 문화재는 가까이에서 보아야 진가를 알 수 있지만, 탐진강변의 정자들은 물을 사이에 두고 보아야 맛이 난다. 강 건너에 있는 부춘정을 바라본다. 비의 빗금이 또렷하여 정자의 모습은 흑백사진 속 추억의 모습 같다. 금이 많이 간 필름. 그러나 부춘정은 오래 되었더라도 빛이 바랜 사진은 아니다. 옛날인 듯 선명히 떠오르는 고향 친구. 그 얼굴이 부춘정의 변함없는 모습이다. 정자의 이름은 부